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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Sep 27. 2016

꿈과 믿음은 어떻게 사람을 움직이는가

조 존스톤, <옥토버 스카이October Sky>, 1999

* 스포일러 : 중간



영화 <옥토버 스카이>는 1957년 10월 4일,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의 발사 소식을 접한 미국의 작은 탄광촌 콜우드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영화는 냉전시대 미·소의 대립이나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로 인해 고조된 미국의 위기의식을 다루지 않는다. 영화는, 별똥별처럼 날아가는 소련의 인공위성을 바라보며 꿈을 품는 소년에서 출발한다. 밤하늘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인공위성을 본 다음날 아침, 영화 속 주인공 호머(제이크 질렌할Jake Gyllenhaal)는 가족들 앞에서 선언한다. "나는 로켓을 만들 거예요."


영화는 꿈과 현실의 이분법에서, 현실과 타협할 수 있는 명분이 끝없이 밀려올 때에도 결국 꿈을 선택하는 소년의 분투를 그렸다. 꿈은 단순히 좋아하는 마음만 가지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꿈을 선택하기 위해 현실에서 포기하고 버려야 하는 것의 무게 또한 결코 가볍지 않다. 이것이 영화가 주는 첫 번째 메시지다. 꿈을 선택하는 것은 단단한 현실의 제약에 맞서는 일이다.


아버지의 강도 높은 반대, 형과 친구들의 조롱, 선생님의 냉소, 산불의 범인으로 오해받아 겪게 되는 일련의 좌절, 아버지의 사고, 탄광 생산량 감소로 인한 지역 경제의 악화, 탄광의 중간관리직인 아버지와 파업 노조원 간에 벌어지는 마찰, 그리고 이 모든 현실적 제약의 핵심이자 원인이며 결과로 존재하는 아버지와의 지독한 갈등. 이밖에도 로켓 만드는 일을 그만두어야 할 이유는 많다. 그것은 단지 꿈을 포기하는 데에 필요한 핑계가 아니며, 그렇다고 독립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요소들도 아니다. 모든 제약은 연속적이고 중첩적이며 즉각적이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기대를 외면할 수 없는 모든 사회적 인간이 짊어진 숙명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호머는 이 모든 현실의 제약을 가뿐히 뛰어넘는 초월적 인물로 그려지지 않았다. 호머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적인 제약에 때때로 패배하고 좌절하고 타협한다. 이렇듯 자주 나약해질 수밖에 없는 호머를 다시 불러내는 것은 그의 꿈이 아니다. 그것은 호머의 꿈을 믿고 지지하는 또 다른 한 사람의 '믿음'이다. 영화 속 릴리 선생님(로라 던Laura Dern)은 호머가 벌이는 이 모든 황당한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믿고 바라보는 단 한 명의 지지자다. 이 영화에서 던지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 바로 여기에 있다. 한 사람의 꿈은 그것을 믿고 지지하는 또 다른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 영화의 끝에 등장하는, 콜우드 마을에서 발사하는 마지막 로켓의 이름은 'Miss Riley'였다. 로켓을 만들겠다는 꿈은 호머가 꾸었지만, 그 로켓을 하늘 높이 쏘아 올린 동력은 릴리 선생님의 믿음이었던 것이다.


"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 "하고 싶은 일에 미쳐라." 온갖 멘토들의 외침이 미디어를 타고 범람하는 시대지만, 온전히 나를 이해하고 믿어주는 한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릴리 선생님은 그저 눈 앞에 있는 어리숙하고 철없는 한 아이를 믿고 지켜보았을 뿐, 자신의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불어넣으려 하지 않았다. 반면 우리는 모든 것이 편리하고 효율적이게 되어버린 세상에서, 꿈을 향한 믿음과 지지마저도 너무나 간단하게 주고받으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덧붙임

호머 히컴 역을 맡은 배우는 제이크 질렌할이다. 이 영화에서는 그의 맑은 눈빛, 생글생글 순진한 미소, 꿈을 앞에 두고 좌절한 표정과 아버지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글거리는 눈을 볼 수 있다. 탄광에 출근하라는 아버지에게 읊조리듯 "탄광은 아버지의 인생이지, 제 인생이 아니에요."라고 말할 때와, 떠나라고 말하는 아버지를 향해 '떠나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을 것'이라고 절규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꿈을 대하는 순수하면서도 뜨거운 마음에 영화를 보는 내내 울컥했다.


덧붙임 2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흔히 생기는 오해를 한 가지만 짚어두어야 할 것 같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모든 이야기는 허구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것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 사건 또는 배경에서 영화의 모티브를 일부 차용했다는 말일뿐, 실제 일어난 일을 오롯이 담았다는 뜻은 아니다. 모든 이야기가 그럴진대, 하물며 영화는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실화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고 해도 수많은 영화적 기법과 장치, 감독의 의도, 배우의 해석 그리고 관객의 수용 방식에 따라 모든 영화는 시시각각 재구성된다. 이 영화에서는 호머 히컴이라는 실제 미 항공우주국 기술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영화의 모티브로 삼았고, 함께 로켓을 만들었던 세 친구와 릴리 선생님, 그리고 호머의 가족이 실존인물로서 의미 있게 등장한다.


덧붙임 3

결말이 아쉽다. 마지막 Miss Riley호의 발사 스위치를 꼭 호머의 아버지가 눌러야만 했는가. 병석에 누워있는 릴리 선생님이 스위치를 누를 수 없는 것은 이해하지만, 영화 내내 아들의 연구에 냉랭하기만 했던 아버지가 콜우드에서의 마지막 로켓을 발사하는 것은 과분한 호사가 아닌가. 아무리 갈등 해소 장치가 필요하다 해도, 아들의 꿈을 위해 적대적인 파업 노조원 무리를 정면으로 돌파한 호머의 어머니가 엔딩 시퀀스에서 빠진 것은 못내 아쉽다. 결국 어머니의 갖은 배려와 노력은 너무나 당연하게 초기값으로 설정되어 있고, 고집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데다가 퉁명스럽기까지 한 아버지의 간헐적 배려는 너무나 당당하게 감동 포인트로 영화의 결론부에 배치된다는 점. 이게 과연 제1세계의 세기 영화에등장하 철 지난 유행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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