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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Mar 19. 2020

한국형 좀비물의 약진

김성훈, <킹덤>, 2019-

* 스포일러 : 약함



2020년 3월 현재, 시즌 2까지 제작되어 상영 중인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은 꽤나 오랫동안 한국형 좀비물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듯하다. 압도적인 걸작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동안 한국에서 만들어진 좀비물 자체가 별로 없고 그만큼 소비기반도 얇았던 것에 비해 뚜렷이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는 물론 넷플릭스라는 거대 미디어 스트리밍 플랫폼의 성장과도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킹덤>의 가장 큰 매력은 그것이 익숙한 좀비물이면서도 굉장히 한국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색다른 매력을 선보인다는 데에 있다. 임란 직후 조선이란 중세 국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권력의 암투와, 그 과정에서 상당히 개연성 있게 소개되는 좀비의 출현은 기존 좀비물에서 흔히 볼 수 없던 그야말로 신선한 조합이다. <킹덤>은 젊은 왕비를 통해 원자를 생산하여 왕의 다음 후계자로 삼으려는 간악한 외척세력과 의롭지만 힘없는 세자의 대립 상황으로부터 시작된다. 왕은 한 번 죽었으나 명분상 그를 필요로 하는 외척세력에 의해 비밀리에 되살아난다. 이때 죽은 자를 되살리는 생사초라는 약재가 사용되고, 그렇게 되살아난 사람은 산 자의 피와 살을 탐하는 괴물, 즉 좀비가 된다는 설정이다. 한 나라의 왕이 1호 좀비로 되살아난 것이다. 원인모를 질병의 창궐이 아닌, 부패할 대로 부패한 권력의 꼭대기에서부터 수직으로 내리꽂는 서사다. 도입부를 잘 써서 극의 전체적인 중심까지 잡은 훌륭한 각본이다.


<킹덤>은 액션과 카메라 무빙에서도 인상적인 연출을 선보인다. 좀비의 목을 베거나 활로 이마를 꿰뚫으면 죽일 수 있는 설정은 중세 한반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활과 도검 액션에 어우러지며 좀비물과 시대의 조합을 선명하게 각시킨다. 정치적인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궁궐을 담은 차갑고 정적인 앵글과, 좀비 떼와 인간혈투를 담은 뜨겁고 동적인 카메라 무빙의 대조가 돋보인다. 좀비 떼의 양감과 기괴한 분위기를 강조하는 부감 쇼트, 목이 잘린 좀비의 시점 쇼트 등 각기 적재적소에 배치되며 장르적 쾌감을 선사한다.


한국형 좀비물 하면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과 <서울역>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부산행>은 한국형 좀비물의 상업적 신호탄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럼에도 <부산행>과 <서울역>의 세계관은 다소 낯설다. 그 세계에서는 정말 아무도 좀비를 모르는 건가. <새벽의 저주>, <28일 후>, <좀비랜드>, <월드워 Z>와 같은 대중적인 좀비물들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라는 건데, 설정 자체가 어색하지 않나. 물론 이전 작품들도 대부분 같은 전철을 밟아왔지만, 여태까지 그래 왔다고 앞으로도 그래야만 할 이유는 없다. 여러 매체를 통해 좀비의 정체를 익히 알고 있는 한국인이 주인공인 하드코어 좀비물이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는 것이다.


물론 <킹덤>은 그런 작품이 아니다. 다만 좀비물의 시조라고 할 만한 작품들보다 훨씬 앞선 시대의 조선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세계관의 단절(혹은 충돌)을 피해 갈 수 있을 뿐이다. 모든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가 현실의 세계관을 공유할 필요는 없지만, 현실의 한 부분을 비틀어 일종의 대안현실(평행우주)을 창작하는 시리즈물로서 다른 좀비물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세계관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커다란 장점이다.


좋은 점 위주로 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배두나의 쓰임. 주지훈이 배우로서 자신의 기량과 가능성을 마음껏 낼 수 있었던 데에 비해, 배두나는 뭔가 핵심적인 연결고리로중요한 사건을 일으킬 것만 같은 분위기가 죽 이어지지만 그뿐이다. 시즌 3에선 달라지길 바랄 수밖에. 선악의 역할 대립이 너무 고정적이고 진부한 것도 아쉽다. 다음 시즌에서 완전히 새로운 색깔의 캐릭터가 활약할 것으로 예고된 것은 이런 뻔한 구도를 한 번 흔들어주기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타이밍은 좋은데, 캐릭터도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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