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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Jun 10. 2017

일상적 위협, 공유된 경험으로서의 불행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2016

숨이 막혔다. 소설 속 김지영 씨가 겪는 일들은 일상적이면서 위협적이다. 위협이 일상을 무너뜨리는 순간순간의 위기인 줄만 알았던 사람들에게 김지영 씨의 경험은 낯설다. 어딘지 모르게 작위적이고 지나치게 예민하다고 느껴진다. 이 낯선 풍경을 사람들 눈앞에 거대하게 펼쳐 보이는 것, 이것이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가진 힘이다. 생의 본질을 위협한다기보다, 그 자체로 생의 본질을 이루게 되어버린 '일상적 위협'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한 어조로 쓰였다. 학교에서 배운 소설의 형식, 즉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도식을 적용하기 어렵다. 김지영 씨의 감정도, 그 이야기를 듣고 옮긴 정신과 의사의 감정도, 그 이야기를 읽고 있는 나의 감정도 좀처럼 격앙되지 않은 채로 이야기는 끝난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겪어내야 하는 수많은 차별적 경험을 문학적으로 더 생생하게, 감정적으로 더 사무치게 표현하고 싶을 만도 한데, 그럴 여지도 충분해 보이는데, 끝끝내 참아내는 작가의 힘이 놀랍다.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위협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서는 그 표현 방식마저도 일상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을까.


소설의 결말부에서는 어릴 적부터 김지영 씨가 겪어온 일련의 사건들이 실은 상담치료 중 김지영 씨 본인이 직접 들려준 내용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니까 소설 속 김지영 씨의 에피소드들은, 이를테면 김지영 씨의 선별적 기억이다. 그러면 김지영 씨가 말하지 않은 삶의 다른 부분들(소설에 등장하지 않은 부분들)은 행복한 기억들로 채워졌을까. 김지영 씨는 치료받아야 할 어두운 기억만을 꺼내보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 자신의 일이면서도 남의 일처럼 멀리서 조망하듯 펼쳐 보인 삶의 단면들은 사실 김지영 씨 본인의 입장에선 특별히 어두운 기억이 아니다. 치료받고 싶은, 지우고 싶은 절박한 기억들이었다면 그렇게 철저하게 감정적으로 물러서서 바라볼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김지영 씨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수많은 독자가 느낀 대로, 김지영 씨는 특별히 나쁜 상황에 처한 여성이 아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세워 놓은 단편적 기준 속에서 비교적 안정적이고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상황에 있다. 하지만 앞의 두 문장은 사실 나란히 놓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김지영 씨가 나쁜 상황에 처한 여성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 사회의 수많은 다른 여성들에 비해' 그런 것일 뿐이고, 김지영 씨가 비교적 안정적 가정환경을 꾸리고 있다는 사실은 '주로 경제적 여건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즉 두 명제는 서로 다른 잣대를 사용하고 있고, 그래서 비슷한 문장임에도 결론은 다른 방향을 향하게 된다. 김지영 씨가 특별히 나쁜 상황에 처한 여성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 사회 절반의 가려진(혹은 고의로 은폐된) 참혹함을 적나라하게 고발할 뿐이고, 김지영 씨가 안정적 가정환경에 있다는 사실은 제반 여건의 충족이 반드시 여성으로서 개인의 행복과 자아실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징하게 드러낼 뿐이다.


소설은 김지영 씨의 치료를 담당한 40대 남성 정신과 의사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맺는다. 김지영 씨의 삶을 들여다보며 알게 된 여성의 일상적 고통을, '내가 평범한 40대 남자였다면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오만함으로 읽어내는 우리 사회 남성들의 일관성. 언뜻 아내를 이해하는 듯 하지만 결국 좋은 남편, 좋은 '가장'이 되고자 하는 자신만을 앞세운 독단적 배려(의사의 아내는 내담자인 김지영 씨와 마찬가지로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남편은 그저 아내가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겠다는 독단적 결론으로 치닫는다). 김지영 씨와 꼭 같은 이유로 직장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그만 두기로 결심한 동료 의사를 향해 무심하게 던지는 얇은 생각의 조각들은, 이 이야기가 끝나도 현실의 문제는 끝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이 사회의 절반을 이루는 사람들의 공유된 경험으로서의 불행. 일상적 위협으로서의 차별. 그 차별이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당사자로 불러낼 수 있어야 비로소 대화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그런 대화에 힘 보탤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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