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어떻게 존재를 박탈하는가

사울 딥, <저니스 엔드Journey's End>, 2017

by 달리

* 스포일러 : 약함



영화 <저니스 엔드>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최전방 참호를 배경으로 전쟁의 참화를 그려낸다. 전쟁이 끔찍한 이유는 그 모든 대의에도 결국 전쟁의 이행이 여지없이 인간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파괴된 인간의 목숨 값으로 얻은 평화는 누구의 몫일까. 누가 그들에게 평화를 위해 목숨을 버리라 말할 수 있을까. 영화는 절망의 현장에 타의로 내던져진 인간들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불행은 무작위적이고, 위협은 참호를 덮은 안갯속에 흩뿌려져 있다. 스탠호프 대위(샘 클라플린Sam Claflin)의 C중대는 곧 독일군의 대대적 공격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단지 순서가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최전방 참호에 배치된다. 각 중대의 배치 기간은 6일. 간발의 차이로 죽음에서 한 발 비껴간 전임 중대의 한숨과, 반대로 죽음에 바짝 다가선 C중대의 침묵을 가르는 공기가 무겁다. 모든 중대가 기간을 정해 번갈아가며 참호를 지키는 방침은 얼핏 공평해 보이지만, 목숨을 걸고 벌이는 이 폭탄 돌리기 게임에 장식처럼 얹어진 기계적 형평성이 큰 의미가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스탠호프 대위는 극심한 불안으로 환각을 겪는다. 아무 잘못 없이 눈앞에 죽음을 마주하게 된 스탠호프는 나약해져 가는 정신을 술로 간신히 추스른다. 롤리 소위(에이사 버터필드Asa Butterfield)는 그런 스탠호프의 옛 친구이자 그가 사랑했던 여인의 동생이다. 롤리는 위험한 줄 알면서도 스탠호프를 찾아가지만, 스탠호프는 롤리를 반기지 않는다. 오히려 긴 전쟁으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에 혐오감을 느낄 것만 같은 롤리를 불편해한다.


그런 중 적 참호를 기습해 독일군 포로를 잡아오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양측의 전면전을 앞두고 떨어진 이 위험천만한 명령 앞에서 스탠호프는 패닉에 빠진다. 오스본 중위(폴 베타니Paul Bettany)는 그런 스탠호프를 비롯한 전 중대원을 안정감 있게 리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결국 오스본과 롤리가 병사들을 이끌고 기습에 나선다.


흥미로운 것은 이 영화가 전쟁을 배경으로 설정하면서도 전투 장면을 정밀히 묘사하는 데에는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 중반 영국군의 기습을 묘사한 신은 정돈되지 않은 앵글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뒤섞이는 발자국 소리와 초점 없이 불규칙한 카메라 무빙을 통해 혼란에 휩싸인 현장감만이 어렴풋이 전해올 뿐이다. 실제 전투의 이미지를 가장 사실적으로 묘사하고자 했던 감독의 시도는 이렇게 막연한 공포감으로 틈입한다. 이런 묘사 방식은 영화가 시종 강조하는 전쟁의 혼란스러운 이미지와 포개어지며 그 안에 어떤 앙상한 인간의 모습을 성공적으로 포착해낸다.

영화에는 적 독일군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데, 그럼에도 인물들의 내면은 시시각각 무너져간다. 즉 전쟁이 행하는 인간의 파괴는 단지 적의 공격에 의해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에서 의미를 찾는 인간이 자신의 쓸모가 한낱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각함으로써 결정적으로 일어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무너져가는 듯 보이지만, 실은 하나같이 전쟁에 의해 자기 존재를 박탈당한 사람들이다.


영화 후반부, 포격으로 초토화된 영국군 참호와 롤리의 누나가 앉아 있는 평화로운 응접실의 대조는 그런 존재와 무의 차이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미 죽고 없을 롤리의 편지를 뜯어 읽는 동안 누나에게 롤리는 살아있는 의미 그 자체이다. 하지만 진실의 전말을 마주했을 때, 동생을 앗아간 전쟁의 의미는 그녀에게 무엇으로 기억될까. 전쟁이 휩쓸고 간 바로 그 자리에서 죽은 인간들의 의미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이제 누구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평화이다. 결국 전쟁이 가져오는 평화란 대개 파괴된 인간성 위에 위태롭게 피어오른 신기루일 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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