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읽은 책 중 가장 가슴 아픈 책이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는 고통의 무참함이란, 그와 비슷한 경험을 갖지 않은 사람이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능란한 위로와 어루만짐의 언어도 참척의 검은 절망 앞에선 가뭇없이 바스러진다. 그럼에도 그들에겐 어쩔 수 없이 위로가 필요하다. 죽은 자식을 품에서 떠나보내기 위해 깊은숨을 쉬고 가만히 애도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긴 침묵의 시간 동안 함께 있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위로와 애도의 시간을 박탈당한 한 엄마의 회고록이다. 그녀의 아들 딜런 클리볼드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 직후 세간에 악마로 회자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딜런은 자기 목숨만 버린 것이 아니었다.
1999년 4월 20일, 수에게 남편 톰의 다급한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혼란스러운 통화 내용 속에서 겨우 건져낸 정보는 가히 충격적이다.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총격사건에 아들 딜런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 이때만 해도 수는 아들이 그 사건의 가해자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날 딜런 클리볼드는 친구 에릭 해리스와 함께 그들이 다니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총으로 13명을 살해하고 24명을 다치게 했다. 곧이어 출동한 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이다 도서관에서 자살했다. 사건 이후 딜런의 가족은 곧장 거센 소용돌이의 한가운데로 빨려 들어갔다. 그들이 사는 작은 마을 리틀턴에는 미국을 넘어 세계의 이목과 비난이 쏟아졌다. 가해 당사자는 죽었으니, 돛을 잃은 분노는 남겨진 부모를 향했다. "부모가 얼마나 방치했으면", "어떻게 그런 아이를 부모가 미리 알아차리지 못할 수 있지?" 그들 말대로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해 무너져버린 삶의 경계에서 가시 돋친 말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결국 수는 딜런이 그런 아이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변명이 아니다. 수는 학살을 저지른 아들의 입장을 감싸고 돌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생의 어느 순간에 딜런을 막을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누구보다 크게 가지고 있을 그녀이지만, 이미 저질러진 범행을 부인하거나 변호할 의도는 읽히지 않는다. 그녀 자신이 솔직하게 밝혔듯이, 수는 딜런을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어떤 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무지의 영역을 무지의 상태로 남겨둔 것이 씻지 못할 죄의식으로, 지워지지 않을 상처로, 평생의 숙제로 남았다.
수가 알던 딜런은 가족과 친구에게 상냥한 아이였다. 때때로 불안하고 성마른 모습이었지만 여느 미숙한 십대들과 다르지 않다고 여겨 사사로이 개입하지 않았다. 폭력과 차별에 둔감한 것은 아니었다. 딜런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용납될 수 없고 돌이킬 수도 없는 폭력에 대한 교훈을 부모로부터 받으며 자랐다. 그들은 단호했고, 그런 중에도 따뜻했다. 부모는 딜런이 정서적으로 결핍되지 않도록 다양한 감정을 그들만의 방식으로 교유했다. 말하자면 톰과 수는 좋은 부모가 되고자 노력하고 기뻐하고 좌절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그들의 눈에는 딜런도 그렇게 평범하고 안정적인 아이로 보였다.
사건 이후에 발견된 '지하실 테이프'에 녹화된 딜런의 모습은 그래서 더 끔찍했다. 침침한 지하실에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으로 증오와 차별의 언어를 토해내는 딜런이 낯설고 역겨웠다. 마지막까지 설마 하는 마음을 지푸라기처럼 붙들고 있던 수는 결국 아들이 괴물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자기가 알던 사랑스러운 아들의 모습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죽은 괴물의 흔적을 기워붙여 딜런의 전체를 이해하고자 했다. 그 이해의 작업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다.다른 무엇보다 딜런 본인이 자살로 자신에 관한 비밀을 영원히 감춰버렸으니.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살인마를 이해하고자 이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사건에 대한 적나라하고 자극적인 묘사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가해자 유족의 변론을 듣기 위함도 아니다. 우리는 이 책에서 다만 한 사람의 깊은 고통과 좌절, 그리고 처절한 분투를 본다.가장 잘 알고 있다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아들의 얼굴이 실은 반쪽짜리였고, 남은 반쪽이 살인자의 얼굴을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어떤 엄마의 눈물 어린 기록을 본다.딜런이 살인을 저지르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차라리 아들이 죽기를 바랐지만(그래야 한 사람이라도 덜 죽을 테니)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그를 사랑했다 고백하는 인간의 양심을 본다. 내가 어떻게 그녀를 비난할 수 있을까.
사건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바, 애초에 에릭과 딜런의 의도는 폭탄테러였다.그들은 학생들이 많이 모일 시간을 노려 학내 카페테리아에 폭탄을 터뜨려 수백 명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설치한 폭탄이 작동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자살도 수세에 몰려 저지른 극단적 선택이 아니었다. 둘은 처음부터 죽을 생각이었다. 무엇이 이들을 그토록 끔찍한 파괴행위에 침잠하게 만들었을까.
많은 언론 기사와 대중이 주로 가해자 유족에게서 원인을 찾고 분석하고 책임을 물었다. 수는 명료한 해답과 그럴듯한 견해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욕망에서 두려움을 읽는다. 나와 내 자식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으며, 설사 그런 일이 일어날 기미가 보인다 해도 자신은 사전에 알아보고 예방할 수 있으리라는 자기 방어적 두려움. 그런 그들의 바람대로 아무 일도 없으면 좋겠지만, 답이 그렇게 간단히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수는 경험으로 안다. 딜런을 잘 알고 지냈던 가족, 친지, 이웃, 친구들이 증언하듯 딜런은 여느 평범한 십대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래서 더 이 책을 써야 했을 것이다. 수가 찢어지는 마음 가까스로 부여잡고 쓴 이 책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파괴적인 충동에 잠식당한 아이들이 얼마나 완벽하게 자신을 감출 수 있는지 알려주는 충격적인 보고서다. 자식을 사랑하는 모든 부모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