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은, 『계속해보겠습니다』, 2014
애자는 요즘도 밤에 전화를 걸어옵니다.
가엾게도.
애쓰지 마.
의미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덧없어.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나나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227쪽
별로 없어, 좋은 건.
그러니까 그런 걸 기대하며 살아서는 안되는 거야.
기대하고 기대할수록 실망이 늘어나고, 고통스러워질 뿐인 거야.
57쪽
왜 너희는 행복하니.
왜 너희만 행복해지려고 하니.
137쪽
모세씨는 궁금한 적 없었나요, ……아버지는 왜 요강을 남의 손으로 비울까, 어머니는 왜 남의 요강을 비울까,
……
남이라뇨,
……
남이 아니에요?
어떻게 남이죠?
남인데.
가족인데.
가족은 남이 아닌가요?
남이 아니죠.
147쪽
그러면 모세씨는요? 모세씨도 가족인데, 모세씨도 요강을 비워본 적 있나요.
……왜 그런 걸 자꾸 물어요?
궁금해서요.
모세씨는 한숨을 쉬면서, 등받이 쪽으로 푹 꺼지듯 기대앉더니 부부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두사람은 부부잖아요, 부부 사이에 그 정도는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런 말을 끝으로 이제 이 이야기는 끝,이라는 듯 탁자 쪽으로 몸을 당기고 왕성하고도 완강하게, 샐러드를 먹었습니다.
148쪽
모세씨는 나하고 틀림없이 결혼할 생각인가요?
네.
아이가 있으니까?
그게 수순이기도 하고요.
수순요?
당연한 것 아닌가요?라고 되묻는 모세씨에게 당연하지 않아요,라고 답했습니다.
나는 모세씨하고 결혼할 생각이 없어요.
149쪽
세계는 어때? 괜찮아? 아기를 낳아도 괜찮아,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은 괜찮아? 나를 왜 태어나게 했어, 아기가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지? 저기, 인간의 수명은 보통 팔십년이잖아. 그런데 내내 불행할 뿐이라면 어쩌지? 나 때문에 태어난 아기가, 삼십년이고 사십년이고 불행할 뿐이라면 어떡하지? 괜히 태어났어,라고 생각한다면? 생각하고 생각해도 생각할 것이 남아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더 생각하고 싶은데, 그런데 생각을 더 하다보면 이렇게 더 생각하는 것이 좋은가, 정말 좋은가, 그런 생각까지 하게 돼. 있잖아, 모두들 어떻게 하는 걸까. 모두들 어떻게 아기를 만들어? 어떻게 아기를 낳아? 모두 이런 걸 부지런히 생각하며 아기를 만드는 거야? 실은 모두들 부지런하게 이런 걸 고민한 결과로 아기를 낳고 살 결심을 하는 거야?
183쪽
걱정이 된대. 그런 데엔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사니까 험악한 일도 자주 벌어질 테고 새터민도 많이 살고 무엇보다도 편부모 가정이 많아서, 거기서 자란 애들하고 자기 아이하고 섞여 자라는 게 싫다는 거야.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모의 돌봄이 아무래도 부족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발달에 격차가 생긴다는 거야. 걔네들은 정서적으로도 불안하고 말도 어눌하고 학습도 별로, 여러모로 부족한 경우가 많대. 그렇게 건강하지 못한 아이들하고 이웃하고 살면서 자기 애들이 영향 받을 게 걱정된다는 이야기였어. 그건 진짜일까? 정말 그럴까? 왜냐하면 이제 내가 편부모잖아? 내가 편부모가 될 예정이잖아? 그러면 내 아기는 부족해질까?
……
편부모가 아닌 상황이라면 부족하지 않아? 편부모가 아니라면 무조건 사랑받으면서, 건강하게 자라게 되는 거야? 자기들은 편부모 상황에서 자라지 않은 건강한 사람들이라서 그런 것을 다 걱정하고 있는 거지? 그런 게 건강한 거라면 나는 건강하지 않아도 좋아.
199쪽
당신이 상상할 수 없다고 세상에 없는 것으로 만들지는 말아줘.
187쪽
애자는 요즘도 밤에 전화를 걸어옵니다.
가엾게도.
애쓰지 마.
의미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덧없어.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나나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2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