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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Nov 29. 2018

기억 둘. 맷집

내가 맞은 것만 맞은 게 아니더라

학창 시절 나는 제법 눈치 빠른 아이였던 것 같다. 장난기 많은 친구들은 간간이 선생님께 불려 나가 몇 대씩 맞곤 했는데, 나는 그런 기억이 별로 없다. 나도 분명 장난기 많은 어린아이였는데 말이다.


드물게 매 맞은 기억은 드물어서 더 선명하다. 가장 먼 기억은 11살의 어느 미술 시간. 그 날 스케치북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는 맞았다. 어린 나이에도 이게 맞을 정도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많이 분하고 억울했다. 때 이른 분노와 반항심에 사로잡힌 나는 그 날 끝내 울지 않았다.


감각은 금세 무뎌지고 기억도 흐려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나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 교사란 직업을 갖게 되었고, 손바닥만 한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그날 내가 맞은 건 스케치북 때문이 아니었다는 걸. 나는 초등학생 때 미술 시간을 유독 싫어했는데, 일부러 준비물을 안 가져가고선 깜빡했다고 둘러대기 일쑤였다. 뻔뻔한 핑계에 혀를 차던 선생님이 '그럼 그냥 두 시간 동안 가만있든지'하고 포기하는 게 정확히 내가 원하는 바였다. 11살 때 만난 선생님은 아마도 그런 잔꾀를 용납하지 는 분이셨던 것 같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그 날 선생님은 내 버릇을 고쳐주려 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때려도 되는 건 아니다. 상습적으로 잔꾀를 부리는 아이에 대해 체벌을 허용한다면, 매 맞지 않고 무사할 아이가 얼마나 되겠나. 결국 선생님의 잘못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기억 속 한 곳에 머문 나의 선생님을 작게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내가 그 선생님과 닮아졌때문일까.


지나치게 버릇없이 아이를 볼 때마다 죄책감처럼 불편하게 스치는 생각이 있다. '딱 한 대만 맞으면 저러지 못할 텐데.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절대 저럴 수가 없는데.' 하는 생각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아직 멀었다는 걸 느끼지만 어쩌겠는가. 그렇게 맞으며 자랐는걸. 교사가 되고 나서 알게 된 또 하나의 사실. 내가 직접 맞은 것만 맞은 게 아니었다. 맞은 녀석들마다 영락없이 입을 다물게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맞은 것과 꼭 같은 효과를 가져왔다. 매 앞에 장사 없다는 진리를 는 학교에서 처음 배웠다. 그것은 일종의 맷집이었다. 맞아본 사람만 아는, 맞을수록 느는 맷집.


나는 아이를 때리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현재의 학교가, 그리고 사회가 아이들을 때릴 수 없게 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약자를 보호하는 일은 매 순간 진보하는 인간 사회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 지향점이다. 하지만 가끔씩 불쑥 찾아드는 체벌에 대한 유혹까지 말끔히 솎아내긴 어렵다. 해맑게 버릇없는 아이를 볼 때 가끔 쥐어박아주고 싶은 마음 말이다. 어릴 적 키워놓은 맷집은 그렇게 저물녘의 그림자처럼 질기게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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