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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Feb 08. 2019

여행기 2

원본과 사본, 진짜와 가짜의 경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코스 중 하나가 바로 박물관, 미술관 관람이죠. 저도 이번에 영국 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프라도 미술관, 레이나 소피아 국립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세계사와 예술에 대해 아는 바가 적어 유물과 작품의 깊이를 충분히 느끼지 못한 점은 아쉬웠지만,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대체로 잘 되어 있어서 그럭저럭 즐겁게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현지 가이드 투어도 좋아 보이더군요.


저는 관람을 하다 보면 항상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게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는 걸까.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반발심은 아니고, 그냥 순수한 호기심입니다.) 알다시피 작품에 권위를 부여하는 기준은 다양하죠. 작품 자체가 객관적으로 월등히 뛰어난 경우도 있고, 작가의 명성이나 작품에 얽힌 사연이 그 작품을 빛내주기도 합니다. 보통 이 모든 요소들이 버무려져 한 작품의 원본을 이루되죠.


프라도 미술관의 대표적인 걸작,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앞에서 다시 한번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누군가 이걸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이 그려낸다면, 그 또한 걸작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물론 그럴 수 없죠. 그림의 원본을 이루는 중요한 재료인 작가와 이야기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기껏해야 잘 그린 습작이나 이미테이션 취급을 받게 될 겁니다.


<시녀들>, 디에고 벨라스케스, 1656, 프라도 미술관


하지만 피카소의 잘 알려진 모작 <시녀들>에서는 상황이 사뭇 달라집니다. 300년의 간격을 두고 또 다른 거장이 자신이 존경하는 화가에게 보낸 오마주로서,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원본이 된 겁니다. 이 모작의 모작도 새로운 원본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겠죠.


<시녀들, 벨라스케스를 따라서>, 파블로 피카소, 1957, 피카소 미술관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건 프라도 미술관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앞서 런던 테이트 모던이라는 현대 미술관에 다녀왔는데, 그때 운 좋게도 마르셀 뒤샹의 <샘>을 볼 수 있었습니다. 물론 1917년 뉴욕의 전시회에 최초 출품된 오리지널은 아니겠지만, 그게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작품 자체가 공장에서 찍어낸 수많은 기성품 소변기에 서명을 한 것뿐이니까요. 중요한 것은 사물이 아니라 그 안에 든 개념이겠죠.


마르셀 뒤샹의 <샘>


세상에 존재하는(혹은 존재했던) 무언가를 정교한 이미지로 재현해내는 것이 예술이라면, 뒤샹의 <샘>은 짓궂은 장난에 불과할 뿐 결코 오리지널의 영예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 소변기는 20세기 현대미술에 획을 그은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이 작품의 어떤 면에 그토록 대단한 권위를 부여한 걸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질문 안에 이미 답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고 이런 질문을 떠올리도록 한 것만으로 현대미술의 지평을 극적으로 넓혔다고 보는 거죠.


사실 이 작품을 처음 본 사람들 대다수가 같은 생각을 합니다. '작가가 한 거라곤 서명밖에 없는 이 소변기가 그렇게 대단한 예술품이라고?' 하는 의문이죠. 저도 그랬습니다. 2002년, 이 작품이 낙찰된 금액이 무려 100만 달러거든요. 저 정도 서명은 '나도 할 수 있는데' 말이죠. 가치 있는 예술은 특별한 영감과 재능을 지닌 예술가의 손에서만 탄생한다고 생각해온 사람들에겐 당연한 논리입니다.


하지만 작가가 한 건 서명뿐만이 아닙니다. 뒤샹은 일부러 이 소변기를 90도 눕혀놨어요. 샘물이 인체를 통해 배설되어 나가는 종착지로서의 변기를, 90도 비틀어(사실상 거꾸로) 전시함으로써 새로운 시작점으로 설정한 거죠. 이 작품의 제목이 <샘>인 것도 그런 역설적인 시작점을 뜻합니다. 배설물이 빠져나가는 구멍이 아니라 새물이 솟는 샘.


그런데 이 역설적인 개념은 단순히 샘이라는 아이디어에만 국한되지 않고 예술 일반으로 확장됩니다. 요컨대 어떤 사물이 기존에 존재하는 방식 그대로를 정교하게 구현하는 것만 예술이 아니라는 거죠. 그보다 예술이라는 것 자체를 어떻게 다르게 해석하고 변주하고 재정의할 수 있는가가 현대 예술의 주된 관심사입니다. 변기를 90도 틀어놓고 기존에 바라보지 않던 관점으로 바라보니 조각상처럼 정교한 샘의 곡선이 드러나듯 말입니다. 바라보는 관점과 생각의 프레임을 한 눈금 비틀면 그만큼 새로운 개념이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뒤샹이 서명한 소변기는 서명한 바로 그 순간부터 더 이상 소변기가 아닌 거죠. 우리가 섣불리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플라톤은 세계가 이데아(이상적 관념의 영역)의 그림자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그림자의 한 순간을 포착하여 재현한 그림은, 아무리 정교하고 아름다워도 본질적으로 이데아와 동일시될 수 없다고 봤죠. 즉 이데아를 불변의 원본으로, 예술을 포함한 다른 모든 것들은 이데아를 모방하는(하지만 결코 같아질 수는 없는) 사본으로 파악한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점이라 부르는, 위치만을 지니는 수학적 개념은 현실에서 반드시 넓이를 갖게 되죠. 아무리 정교하게 찍어도 현실의 점은 일정한 면적을 차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관념으로서의 점은 원본이 되고, 그 관념을 이해하기 위해 실제로 그린 점은 사본이 되는 겁니다. 플라톤은 이데아(원본)와 예술(사본)의 거리도 그만큼 엄밀히 떨어져 있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뒤샹은 원본과 사본의 경계를 허물었어요. 영원불변의 가치를 담은 원본의 존재를 허물고 대량 생산된 기성품 중 하나를 무작위로 골라 그 안에 전혀 다른 예술의 의미를 불어넣은 겁니다. 이쯤 되면 무엇이 원본이고 무엇이 사본인지 종잡을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그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조차 모호해지죠. 원본과 사본,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점차 흐릿해지는 겁니다. 하지만 물론 현실에선 여전히 둘의 경계가 엄밀합니다.


여행의 막바지, 바르셀로나에 며칠 머물면서 하루는 근교 60km 거리의 몬세라트에 다녀왔습니다. 톱니산이란 뜻의 몬세라트 꼭대기에 작은 수도원이 있는데, 이곳 수도원 2층에 유명한 검은 마리아상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1200년 전 성스러운 힘에 이끌린 목동들에게 처음 발견되었다는 이 조각상은 나폴레옹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원본을 그대로 유지한 채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현재 유리로 보호된  오른손 일부와 그 손에 들린 구체 형상이 방문객들에게 오픈되어 있는데, 해마다 수백만 순례자가 이곳에 와서 성스러운 구체를 만지며 기도하고 소원을 빌죠.


몬세라트 수도원 내부의 <검은 마리아상>


사람들을 따라 소원을 빌고 나와서 조금 걷다 보니 관광명소마다 하나씩 있기 마련인 기념품샵이 보였습니다. 예상대로 수많은 검은 마리아상의 모조품들이 제각각 가격표를 붙인 채 자본주의의 첨병들처럼 서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았더니 실제 수도원의 검은 마리아상만큼이나 섬세하게 잘 만들어져 있더군요. 하지만 아무리 잘 만들어봐야 여기 놓인 기념품들을 어루만지며 진지하게 소원을 빌 사람은 없을 겁니다. 원본이 아니기 때문이죠. 원본과 사본의 경계는 예술과 신앙의 영역을 제멋대로 넘나들며 힘을 발휘합니다. 최초의 검은 마리아상은 불후의 원본으로 수많은 사람이 애써 찾는 성물이 되었지만, 이 기념품 사본들은 결코 수도원 2층의 거룩한 자리에 앉아볼 수 없을 겁니다. 현대미술에서 원본과 사본의 경계는 분명 흐릿해졌지만, 현실을 사는 우리는 여전히 직관의 힘을 빌어 원본을 찾고, 거기에 기꺼이 나의 욕망을 투영한 뒤, 아쉬운 대로 기념품 사본을 가지고 돌아섭니다. 이번 여행은 그걸 한번 더 확인하게 해 준 거죠.


몬세라트 수도원 기념품 샵에 진열된 <검은 마리아상>의 모조품들


여행 일정을 알차게 채우기 위해 방문한 박물관과 미술관, 성당과 수도원에서 옛날이야기를 듣다가 난데없이 '오리지널'이란 테마꽂힌 건, 여행 전에는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사와 종교와 예술에 얽힌 크고 작은 이야기들은 그 시절 그 사람들과 나를 연결 지어 상상하게 하는 묘한 힘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없었다면 내가 그 자리에 있을 이유도 없었을 테니까요. 그날 거기 있는 것만으로 어떤 큰 역사의 줄기에 작은 세포 하나로 연결된 것만 같은 느낌에 빠지는 거죠. 그런 약간은 터무니없는 상상 속에서 원본과 사본,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혼자 그었다 지웠다 해본 것은 이번 여행에 특별한 재미를 더해준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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