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1605년작 소설 『돈키호테』속 주인공 돈키호테는 망상에 사로잡혀 현실 분간을 못하는 사람에 곧잘 비유된다. 현실과 이상의 엄밀한 이분법은 돈키호테에게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이분법을 체념하듯 따른다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맥락에서 돈키호테는 조롱과 풍자의 도구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도 쉽게 치부하는 이 괴짜 망상가의 삶 속으로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그는 어느새 모든 몽상가들의 이미지를 표상하는 혁명가로 탈바꿈한다. 겁 없는 몽상가의 꿈은 종종 현실의 모순에 강력한 균열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영화 제목인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극 중 인물 토비(아담 드라이버Adam Driver)의 졸업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스페인 산간 마을에서 현지 주민을 배우로 섭외하여 촬영한 이 영화로 인해 토비는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된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나 유명 감독이 되어 CF 촬영을 위해 스페인에 오게 된 토비는 옛 추억을 회상하며 마을을 방문하고, 당시 돈키호테 역으로 출연했던 구두공 하비에르(조나단 프라이스Jonathan Pryce)와 재회한다. 다시 만난 하비에르는 소설 속 돈키호테와 꼭 같은 망상에 사로잡혀 스스로 돈키호테라 굳게 믿고 있다.
하비에르는 토비를 보자마자 느닷없이 산초라 부르며 반가워한다. 토비는 그런 하비에르의 망상에서 달아나려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세계관 안으로 거칠게 빨려 들어간다. 하비에르는 우리가 아는 돈키호테의 이미지를 충실히 재현하고, 시간이 흐를수록 토비의 삶은 산초의 것으로 치환된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하비에르의 망상 속 여정에 타의로 편입되어 일정 시점 이후로는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인지도 알 수 없게 된다. 영화의 스토리라인은 어느 지점까지는 익숙한 현실의 영역에서 전개되지만, 이후 토비의 꿈과 현실로 나뉘어 다소 몽환적으로 이어지고, 나중에는 뭐가 현실이고 망상인지 알 수 없는 난장판으로 진입한다.
『돈키호테』에서 가장 유명한 이미지는 아마도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돌진하는 우스꽝스러운 돈키호테의 모습일 것이다. 영화는 이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인용하는데, 서사의 전개에 따른 이미지의 변주가 흥미롭다. 처음엔 CF 촬영 세트에서 벌어지는 배우들의 연기로 등장하고, 다음엔 하비에르가 풍차를 향해 돌진하다 부상당하는 현실로 등장하고, 마지막엔 거인들에 맞서 싸우는 토비의 환영으로 등장한다. 꿈과 현실과 이를 표현하는 수단으로써 카메라의 시선까지 담아내면서 영화는 시종 거짓과 진실, 꿈과 현실의 경계에 대한 콘셉트에 천착한다. 영화 후반부에는 이런 감독의 아이디어를 꽤나 직접적인 형태로 드러내는 대사가 등장하는데, 내용은 이렇다. 안젤리카(조아나 리베이로Joana Ribeiro)와의 불륜 관계를 의심할 만한 사진들 몇 장을 보고 당황한 토비가 말한다. "사진은 현실과 달라요. 현실을 찍지만..." 물론 꿈과 현실의 관계, 그리고 현실과 영화의 관계도 다 마찬가지다.
영화는 소설 『돈키호테』서 등장한 이미지를 다양하게 변주하며 인용한다.(출처 :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꿈과 현실의 경계를 다루는 영화가 으레 그렇듯이 이 영화 또한 논리적, 공간적 개연성을 완전히 무시한 듯한 연출을 보여준다. 황량한 사막 같은 벌판에 서있던 인물들이 바로 다음 신에서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마을에 갔다가 그다음엔 동굴에 떨어지고 이 동굴은 또다시 아름다운 호숫가 들판으로 연결되는 식이다. 영화 중반에는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썩은 동물의 시체에서 금화 주머니가 발견되는데, 이 금화는 영화의 결말부에 뜬금없이 금속조각으로 변해버린다. 이밖에도 하나하나 나열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개연성의 공백이 관객들을 끊임없이 낯설게(또는 불편하게) 한다. 이런 이질적인 연출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영화는 꿈의 작동방식에 대해 파고든, 우리가 잘 아는 영화 <인셉션>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접근을 보여준다. <인셉션>이 꿈이 작동하는 원리를 치밀한 공상과학 논리에 기반하여 전개했다면,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는 말 그대로 공상과 망상을 뒤섞어 아무 초점도 없고 질서도 없는 시각으로 펼쳐 보인다. 즉, 이 영화는 돈키호테의 망상을 그린 영화라기보다는, 감독의 오랜(무려 25년 이상) 망상을 실현한 영화이며, 그렇기 때문에 얼핏 조잡스럽고 난잡해 보이기까지 한다.
한편 영화는 간간이 이야기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넘나들며 익살을 부린다. 십 년 전 토비가 자신의 영화에 둘시네아 역할로 출연했던 안젤리카의 아버지 라울과 재회하는 장면에서 둘은 스페인어로 대화를 나누는데, 이때 토비가 스크린 밑에 달리는 영어 자막을 팔로 쓸어버리며 말한다. "필요 없는 자막은 치워버려. 이런 거 없이도 소통 잘 되잖아." 극의 안팎을 넘나들며 관객과 노골적으로 눈을 맞추고 B급 조크를 남발하는 영화로는 최근 <데드풀> 시리즈가 완벽히 자리매김했지만, 이 영화 속 유머는 그것과는 또 다른 엉뚱한 매력을 선보인다. 예컨대 극의 후반부에 안젤리카가 자신을 따라오는 토비를 향해 던진 단검이 이동 중인 영화 세트 용품에 날아가 박히는 장면이 그렇다. 격앙된 인물의 감정선과 흐름을 단번에 끊어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연출이지만 관객은 이것이 감독의 의도임을 안다. 심지어 결말부에는 토비가 직접 영화에 불만을 터뜨린다. "누가 결말을 이 따위로 만들었어!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설명해!" 영화 전반에 걸쳐 있는 이런 엉뚱하면서도 재치 있는 연출 덕분에 영화의 '돈키호테적' 뉘앙스는 더욱 성공적으로 관객에 가 닿는다. 2019년 가장 엉뚱하면서도 매력 있는 영화를 꼽으라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올 한 해 가장 엉뚱하면서도 매력 있는 영화를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떠올릴 것이다.(출처 : 영화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