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지 못했던 세계

연극 <어나더 컨트리> 관람 후기

by 달리

* 스포일러 : 약함



연극 <어나더 컨트리>는 1930년대 영국 명문학교의 기숙사 게스코인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담았다. 한 시대의 복잡다단한 뉘앙스를 녹여내고자 하는 작품으로서는 드물게 매우 좁은 공간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좁은 공간에서 오가는 대화 속 세계관은 결코 왜소하지 않다. 극 중 인물들의 갈등과 고민은 당대 수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겪었던 딜레마를 유의미하게 반영한다.


이 작품의 두 주인공 가이 베넷과 토미 저드는 각각 짓궂은 동성애자와 진중한 공산주의자를 대변한다. 물론 이런 기계적이고 평면적인 도식에 두 캐릭터를 그대로 대응시키는 것은 일면 무책임한 태도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런 기준틀이 필요한 이유는 이 작품에서 두 인물의 마이너리티가 갖는 상징적 비중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토미 저드의 정체성은 극의 시작부터 분명히 드러난다. 열렬한 공산주의자인 저드는 시종 권력과 체제의 모순에 맞서 목소리를 높인다. 비타협적 원칙주의자인 그는 기숙사 선도부인 '프리펙트'와 학생자치조직 '트웬티투'의 권력욕을 훤히 꿰뚫어 보는 영민한 인물이다. 사감이 임명하는 프리펙트에 비해 학생들이 직접 선출하는 트웬티투가 조금 더 민주적으로 보이긴 하지만, 실상은 둘 다 영향력 있는 학생들끼리 기숙사를 장악하고 졸업 후 엘리트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벌이는 파워게임에 불과하다. 권력자와 자본가의 부패를 날 선 언어로 비판하는 저드가 이런 학생조직의 위선을 간파하고 냉소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얼마 못가 저드의 이런 단호한 태도는 난관에 부딪힌다. 기숙사 동기 중에서도 가장 억압적으로 규율을 강요하는 파울러가 멘지스를 제치고 차기 기숙사장으로 뽑힐 위기에 처하자, 멘지스는 저드에게 도움을 청한다. 공산주의 신념에 반하는 임무를 맡기지 않을 테니 프리펙트에 들어와 멘지스의 정치적 입지를 넓혀달라는 것이다. 공산주의 혁명을 지지하는 저드로서는 자본주의 권력집단의 정치행위에 가담하는 것 자체가 신념에 반하는 일이지만, 파시스트적 면모를 지닌 파울러보다는 민주적인 멘지스의 노선을 지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나은 선택인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에 힘을 싣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관한 물음은 혁명과 개혁(개량)의 차이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주제다. 그토록 단호하던 저드가 파울러라는 최악의 현실을 막기 위해 멘지스와 타협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그런 점에서 꽤나 흥미롭다.


한편 가이 베넷의 정체성 또한 극의 도입부에 드러나지만, 처음엔 동성애보다 그의 장난기와 자유주의적 기질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베넷의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은 중반부까지 갈팡질팡하다가 결말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윤곽이 렷해지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죄의식이다. 절친한 저드에게 마치 죄를 자백하듯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베넷의 절규(물론 베넷은 이미 수차례 자신의 동성애 취향을 드러낸 바 있으나, 이 장면에서의 진지한 태도는 이전의 장난스러운 모습과 확연히 대조된다)는, 무감각한 시대의 견고함에 힘입어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두 인물의 마이너리티가 이렇듯 서로 다른 타이밍에 드러나는 것은 저드와 베넷이 각자 자신의 정체성에 갖고 있는 신념의 무게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공산주의에 대한 저드의 신념은 그가 즐겨 읽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의 질량만큼이나 엄연하다. 그에게 공산주의 이론은 언젠가 반드시 현실에 도래할 역사의 필연적 법칙이다. 그에 반해 동성애에 대한 베넷의 정체성은 혼란과 의문으로 가득하다. 베넷은 엘리트 사회로 진출하고자 하는 야심 찬 학생이면서 동시에 남자를 사랑하는 동성애자다. 두 정체성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역시 동성애자였던 같은 기숙사 친구 마티노는 끝내 자살했다). '나는 여자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베넷의 절규가 죄의 자백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은, 누구보다 그 자신이 그 정체성의 의미(사회적 사형선고)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어나더 컨트리>가 관객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정체성의 경계는 과연 어디까지이며, 또한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일 것이다. 스스로 공산주의를 '선택했다'고 말하는 저드에게 베넷은 '난 (동성애를) 선택할 기회조차 없었다'고 답한다. 요컨대 누군가가 선택의 기로에 놓여 갈등하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선택의 기회마저 박탈당한 채로 그가 속한 사회의 선고를 마냥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선택의 결과가 아닌 존재 자체가 심판의 대상이 되는 세상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오히려 축복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프리펙트 가입 여부를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고민하던 저드처럼 말이다. 반면 선택의 여지도 없이 스며든 정체성에 의해 버림받는 것이 모든 동성애자의 운명이었던 사회, 게스코인으로 상징되는 1930년대의 영국은 베넷에게는 더할 수 없이 잔인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억압적이고 권위적인 체제에 순응하는 것을 죄악시하던 저드는 바로 그 권위의 한 자락을 빌려 결연한 어조로 베넷에게 말한다. 체제에 순응하거나, 맞서 싸우거나, 방법은 둘 중 하나뿐이라고. 공산주의자로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충고였지만, 그 시기로부터 어느덧 한 세기를 건너온 미래의 우리는 안다. 그것이 행복을 추구하는 개인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허망한 슬로건에 불과했다는 것을. 현실의 공산주의는 이론만큼 아름답지 않았다. 베넷은 '한 블록도 못가 돌에 맞아 죽을 것'이라며 울부짖고, 결국 영국의 돌을 피해 소련으로 망명한다. 이것은 체제에 순응한 것인가, 아니면 저항한 것인가. 우리가 이 문제를 분별력 있게 판단할 수 있다고 믿을 만한 근거는 무엇인가.


<어나더 컨트리>는 말 그대로 또 다른 세계, 낯선 세계를 뜻한다. 익숙한 세계는 다수가 공유하는 특정 프레임 안에만 존재한다. 이방인 혹은 소수자의 관점을 따라 이 익숙한 세계를 한 꺼풀 벗겨내면, 그 안에 자리하고 있는 세계는 우리가 아는 것과 얼마나 다른 모습일까. 열뜬 생각들을 서툰 언어로 나누는 저드와 베넷의 대화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보지 못했던 또 하나의 우주인 지도 모른다.



덧붙임 1

익히 알려진 대로 연극 <어나더 컨트리>는 1982년 런던에서 초연되어 호평을 받았고, 이후 영화로도 제작되어 1984년 개봉하였다. 이 영화는 배우 콜린 퍼스Colin Firth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올해가 초연이다.


덧붙임 2

전원 남성으로 구성된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였다. 배우 캐스팅 과정에서 높은 경쟁률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연극을 보면 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많은 양의 대사를 명확한 발음으로, 속도감 있게 전달하면서도 연기에서 몰입도가 전혀 흐트러지지 않았다. 쉬는 시간 없이 100분 정도 되는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질 만큼 몰입도가 높다.


덧붙임 3

무대 디자인이 훌륭했고, 공연장이 꽤 넓었는데도 배우들의 속삭이는 소리까지 빠짐없이 전달되어서 좋았다. 학교라는 폐쇄적인 사회에서 벌어지는 부적절한 관행들-이를테면 정치적 단죄와 체벌-의 비밀스러운 뉘앙스가 잘 표현되었다. (모든 인물을 통틀어 가장 일관적이면서 떳떳한 태도를 유지하는 캐릭터가 억압적인 파울러라는 사실은 다소 의미심장하다. 파울러는 자신이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타인을 도덕적으로 심판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 모든 시민을 대변하는 상징적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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