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쥘 드 메스트르, <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 2017

by 달리

나와는 도무지 접점이 없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한 편 보았다. <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은 80분의 러닝타임 안에 프랑스 요리의 거장, 알랭 뒤카스의 2년을 담았다. 요리와 미식에 문외한인 내가 이 작품의 내용에 대해 말을 길게 보태기는 아무래도 무안하다. 영화의 장면들과 함께 떠오른 생각들을 몇 가지 갈무리하여 적는다.


영화의 형식적 얼개는 단순하다. 알랭 뒤카스는 셰프이면서 레스토랑 경영인이다. 그가 베르사유 궁 안에 최초로 레스토랑을 여는 과정이 영화의 가장 굵은 줄기다. 사이사이 작은 줄기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촬영된 필름들이 다채롭게 차려진 음식처럼 배치되었다. 그 안에서 알랭은 카리스마 넘치는 프로페셔널이기도 했다가, 사명감으로 무장한 농부이기도 했다가, 소탈한 이웃집 할아버지가 되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무엇보다 중요한 정체성은 셰프로서의 알랭이다. 카메라와 내레이션은 유능한 리더이자 셰프로서 알랭의 면모를 부각한다. 정제되지 않은 앵글에 카메라 무빙도 발자국을 따라 자주 흔들리지만 그 안을 차지하는 인물의 힘은 비상하다. 작은 재료 하나까지 직접 찾아가 맛보는 디테일의 소유자인 그가, 사람들에게 일을 지시할 때는 일필휘지로 큰 그림을 그리는 대범함을 잃지 않는다. 본인 머릿속에 이미 완성된 그림의 청사진이 존재하기 때문이리라.


최고의 재료를 찾아 떠나는 알랭의 빛나는 여정을 스크린 안쪽 어둑신한 객석에서 쫓아가다 문득, 허기진 배와 휑한 마음을 급히 채우려 라면에 소주를 먹던 기억이 났다. 후식으로 즐기던 믹스커피 스틱에 한 가득 담긴 가벼움을 생각했다. 나는 혼자 살며 요리를 하지 않았다. 내가 차린 음식들은 대부분 나만을 위한 것이었고, 포만감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이를 수만 있다면야 과정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자연히 인스턴트식품과 친해졌다. 나쁘지는 않았다. 덕분에 혼자 밥을 먹으며 무한도전을 볼 수 있었고, 무신경하게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멋진 저녁식사를 기억에 남겨드리는 거죠.


알랭의 여정 속 식사는 내가 삶으로 체득한 식사와 거리가 멀었다. 영화 속 알랭이 말해서 메인 포스터 카피로도 쓰인 멘트, "모든 감각에 맛있는 기억을 남겨주고 싶다"는 것이 그의 식사 철학이다. 다른 일에 정신을 쏟은 채 다분히 기능적으로 음식을 욱여넣는 식사로는 끝내 채울 수 없는 감각이다. 스크린에서는 초로의 신사들이 생기 어린 표정으로 음식에 대해 갖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에게 먹는 일은 단지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기대하고 갈망하는 특정 감각을 누리는 행위로 연결된다. 그 지점에 도달하면 성공한 식사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부족한 식사가 된다. 결국 멋진 저녁식사를 기억에 새기는 일은 무엇을 기대하고 갈망하는지에 따라 그 성패가 갈린다.


오늘 몸 컨디션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약한 편두통이 5분 정도 간격을 두고 간헐적으로 찾아와 괴롭혔다. 대낮의 먼지를 마스크도 없이 뚫고 왔더니 목구멍이 조금 쓰렸다. 영화 시작 30분 전, sns 타임라인을 스쳐가는 뉴스와 함께 허겁지겁 순댓국을 먹어치웠다. 통증을 감안하고 시간을 절약하는 효율적 식사였다. 그런데 그건 좋은 식사였을까.


알랭이 추구하는 저녁식사가 오늘 나의 저녁식사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할 근거는 차고 넘친다. 현실의 식사가 스크린 속에서 취사된 이상적 식사에 못 미치는 거야 어쩔 수 없다 해도, 먹는다는 행위에 대한 한 움큼 낭만은 남았다. 그것만으로 이미 여행의 목적은 이룬 셈. 거장의 식사는 필부의 식탁을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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