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리 Jul 14. 2019

실수와 습관,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차돌떡볶이와 고등어구이정식을 먹으며

얼마 전 아내와 동네 새로 생긴 프랜차이즈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포장해와서 먹었다. 메뉴는 2~3인분에 15,000원가량 하는 차돌떡볶이. 퇴근길 집에 다 와갈 때쯤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낸 분식집 전화번호로 전화를 었다.


"차돌떡볶이랑 쿨피스 큰 걸로 포장이요."

"언제 오시나요?"

"5분쯤 후에요."


전화를 끊고 집에 올라가 짐을 풀고 도로 나왔다. 새로 생긴 분식집으로 차를 몰았다. 끔한 가게 내부에 손님들이 몇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포장 주문한 거 가지러 왔어요."

"포장이요?"

"차돌떡볶이랑 쿨피스 주문했는데요."

"아... 혹시 전화받은 사람이 남자였나요?"

"여자분이었어요."

"죄송해요. 저희 가게가 생긴 지 얼마 안 됐고 직원도 신입이라 실수로 주문이 안 들어간 것 같아요. 지금 바로 만들어드릴게요. 잠깐 앉아서 기다리시겠어요?"

"네. 괜찮아요. 날치알 비빔밥도 추가로 포장해주세요."


아내와 둘이 문 앞 테이블에 앉아 5분쯤 기다리니 주문한 음식이 포장되어 나왔다. 문구점에 들러 편지지를 몇 장 사고 집에 가서 먹기로 했다. 음식을 뒷좌석에 싣고 문구점으로 향했다.


문구점에서 편지지를 고르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분식집이었다.


"떡볶이 가지러 언제 오시나요? 포장해놓고 기다리는데 안 오시길래요."

"네? 조금 전에 가지고 왔는데요."

"... 혹시 새로 오픈한 OOOO점으로 가셨나요? 전화하신 곳은 OO점이에요."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됐다. 내가 전화한 곳은 전부터 영업하던 같은 동네의 다른 지점이었다. 거리가 가깝고 지점명이 비슷해서 대충 보고 전화한 것이 화근이었다. 지금 가지러 가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그만 짜증이 치밀어올랐다. 아내 나의 실수에 살짝 짜증이 난 듯 보였지만 별말 없었다. 또 다른 분식집에 아까 것과 꼭 같은 떡볶이 한 봉지가 약 올리듯 단정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그저 떡볶이가 먹고 싶었을 뿐인데 3만 원이 넘는 돈이 들었다. 큼지막한 떡볶이 봉지 두 개를 들고 집 문을 여는데 헛웃음이 났다. 한 사람이 한 봉지씩 먹을까. 저녁 먹고 야식으로 또 먹을까. 결국 다 펼쳐놓고 지점별로 맛을 비교하며 먹어보기로 했다. 맛이 똑같았다.


며칠 뒤 영화 시사회 보러 아내와 용산 cgv에 갔다. 시사회 시작까지 시간이 남아 건물 안 식당에서 밥을 먹고 서점에 들르기로 했다. 아내가 얼른 메뉴를 검색해서 보여주며 보리밥정식을 먹자고 했다. 슬쩍 본 사진 속 생선이 먹음직했다.


보리밥집으로 가는 길은 용산역을 거쳐 백화점 통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백화점 건물 쪽으로 들어서자 형형색색 예쁜 옷들이 분위기 있는 조명 아래서 매력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쇼핑을 사랑하는 아내는 결국 보리밥집 맞은편 매장에 진열된 붉은 원피스에 시선을 빼앗겼다. 나에게 먼저 식당에 들어가 있으라 말하고는 매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혼자 들어온 식당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메뉴를 펼쳤다. 메뉴판 제일 위쪽에 우리가 찾던 보리밥정식이 보였다.  반찬이 심심해 보였다. 아래 고등어구이정식이 눈에 들어왔다. 기왕이면 보리밥에 구운 생선살을 얹어먹으면 맛있겠다 싶어 별 고민 없이 고등어구이정식 2인분을 주문했다.


아내는 기분 좋은 표정으로 원피스를 사 왔다. 5분 뒤에 음식이 나왔다. 아내의 얼굴에 금세 그늘이 드리웠다. 보리밥을 먹으러 왔는데 보리밥은 없고 대신 무지막지한 크기의 고등어 두 마리가 구워져 나왔다. 고등어구이를 사랑하지 않는 이상 이렇게 시켜먹는 경우는 없을 것 같았다. 아내는 생선구이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미안하고 민망했다.


"쌀밥이 나오는구나. 몰랐네. 그래도 맛있겠다. 그치."

"응. 근데 우리처럼 먹는 사람 아무도 없는 것 같아. 자기 많이 먹어."


보리밥정식에 추가로 고등어 반쪽 정도 올라오는 메뉴를 기대했는데. 아내가 고른 보리밥도 먹고 내가 좋아하는 생선도 먹을 수 있는 조합이라 생각했는데. 메뉴판에 있는 사진을 제대로 보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떨떠름한 얼굴로 밥을 씹던 아내가 나를 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자기가 생각해도 웃기지?"

"응. 눈치도 보이고. 근데 맛은 있네."

"이상해. 저번에 떡볶이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실수는 아니지만 연달아 해프닝이 일어나니 내가 생각해도 왜 이러지 싶었다. 덤벙거리는 건 실수일까 습관일까. 아니면 실수하는 게 습관인 걸까. 나는 내 입장에서 별거 아닌 일은 항상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하며 살아왔는데 그런 태도가 습관을 만들어낸 까. 그나마 다행인 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덜 그런다는 사실이다.


물론 나만 실수하는 건 아니다. 아내는 가끔 말실수를 한다. 무심한 듯 뾰족한 말들로 기분을 상하게 한다. 나와는 기본적으로 화법이 다르다(내가 말실수를 안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한 때 나는 아내의 그런 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마음을 닫아걸고 대화를 거부한 적도 있다. 그럴 때면 답답함에 못 이긴 아내가 먼저 화해를 시도했었다. 실수라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니 그렇게 말없이 다운되 말라고. 그래서 나도 요즘엔 말을 한다. 이러저러해서 기분이 나쁘고 이러저러한 말들로 사과받고 싶다고. 그렇게 또 하나의 균형이 생긴다.


예전에 비하면 아내나 나나 많이 달라졌다. 긴 세월 각자 살아온 사람들끼리 함께 살아가려면 고쳐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다. 혼자 살 때 아무 문제없던 패턴들을 끊임없이 새로 써야 한다. 이해는 그런 노력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생긴다. 흔히 결혼하면 어디까지 이해하고 살아야 하냐고 하는데 핵심은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느냐보다 얼마나 노력하고 실제로 달라지는가에 있는 듯하다. 충분히 훌륭한 사람도 변화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이해할 여지가 줄어든다. 반대로 당장은 많이 부족한 사람도 꾸준히 노력하며 변화하는 게 보이면 그만큼 이해의 폭도 넓어진다. 덤벙거리던 내가 빠릿빠릿해지는 속도만큼, 느려도 하나씩 바꾸면서 균형을 맞춰가는 일이 중요하다. 실수인지 습관인지 모를 반복적 해프닝으로 마음이 어긋날 때마다 대화로 균형을 회복하는 일도.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야식은 차돌떡볶이를 먹기로 했다.

작가의 이전글 특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