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가끔 고민을 너무 많이 해

롭 마샬, <메리 포핀스 리턴즈>, 2018

by 달리

*스포일러 :



수많은 어른아이에게 가슴 벅찬 황홀함을 선물했던 메리 포핀스가 반세기를 건너 돌아왔다. <메리 포핀스 리턴즈>는 전편 <메리 포핀스>(1964)에서 개구쟁이 어린이로 등장했던 제인, 마이클 뱅크스 남매가 다 커서 어른이 된 시점의 경제대공황 시기를 배경으로 삼는다. 수많은 유모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며 발길을 돌리게 만들었던 이 철부지 남매도 이제는 생계의 압박에 시달리며 힘겹게 하루하루를 이어간다. 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니고, 마법도 아니고, 사탕도 아니고, 노래도 아니고, 놀이도 아니다. 제인(에밀리 모티머Emily Mortimer)과 마이클(벤 휘쇼Ben Whishaw)은 감당하기 어려운 빚 때문에 오랫동안 머물던 체리트리 17번가 보금자리를 빼앗길 위기에 놓여 있다. 그들의 삶은 빚과 자산의 끝없는 줄다리기로만 간신히 그 흐릿한 형체가 유지된다.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언제나 진지하다. 어른의 삶은 대충 산다고 살아지는 게 아니다. 걱정하지 않는다고 근심거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아이 같은 천진함, 낙천적인 사고방식은 코앞에 닥친 대출금을 상환하는데 조금도 도움되지 않는다. 영화의 도입부에 간간이 보게 되는 제인의 웃음은 물론 화사하지만, 일상의 팍팍함을 달래는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는 느낌이 드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어쩔 수 없는 요소들이 모여 뱅크스 가족의 삶을 이룬다. 이들이 자의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별로 남아있지 않다.


마이클이 떠난 아내와의 사이에서 얻은 존(나다니엘 살레Nathanael Saleh), 애나벨(픽시 데이비스Pixie Davies), 조지(조엘 도슨Joel Dawson) 뱅크스 삼 남매는 어릴 적의 제인과 마이클을 꼭 닮았다. (약간 다른 점이라면 마냥 천진하기만 했던 제인과 마이클에 비해, 이 삼 남매는 조금 더 일찍 철이 들어 다분히 현실적, 냉소적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애나벨이 특히 그렇다.) 아이들은 빼앗길 집에 대해 때 이른 걱정을 하며 공원을 질러가다 하늘에서 연-전편에서 제인과 마이클이 아버지께 선물 받았던 바로 그 연-을 붙잡고 내려오는 유모 메리 포핀스(에밀리 블런트Emily Blunt)를 만난다. 우산을 쓴 채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전형적인 메리 포핀스의 이미지를 뱅크스 집안의 에피소드에 맞추어 살짝 변형한 것이다. 덕분에 메리 포핀스는 처음부터 뱅크스 집안의 수호천사-또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기계장치의 신)- 뉘앙스를 짙게 풍기며 등장한다.


그렇게 삼 남매를 따라 뱅크스네 집으로 온 메리 포핀스와 제인, 마이클이 재회하는 장면은 사뭇 감격적이기까지 하다. 얼떨떨해하는 제인과 마이클을 반가워하긴커녕 호통을 치는 메리 포핀스의 단호한 얼굴에서 우리는 그녀의 캐릭터를 바로 알아볼 수 있다. 그녀는 뱅크스네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고 그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그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단호하고 냉정해질 수도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메리 포핀스가 연을 타고 날아왔다"는 아들 조지의 말에 상상력이 지나치다며 코웃음을 치는 성인 마이클에게 메리 포핀스는 약간 오만한 톤으로 말한다. "내 기억으론 너도 예전에 그랬지."


내 기억에도 제인과 마이클은 어릴 적 메리 포핀스의 마법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어른이 된 후의 이성이 아이의 진실된 눈에 환상의 안개를 둘렀을 뿐. 제인과 마이클은 말한다. "우리 어릴 때 봤던 거, 다 환상이었지?" 합리적으로 편집된 그들의 기억에 과거의 진실을 돌려주고 싶지만 지나간 시간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때로 삶의 소박한 진실은 어린아이의 눈과 귀에만 오롯이 담기는 법이다. 이것이 메리 포핀스가 우리에게 남기는 교훈이다. 우리는 왜 어릴 적에 보았던 진실을 외면하고, 그것이 당연히 옳다는 듯이 무력하게 어른의 삶을 이어가는가. 어쩌면 어린아이의 삶이 어른의 삶보다 훨씬 진실된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메리 포핀스는 어렸던 제인과 마이클에게 그랬던 것처럼 존, 애나벨, 조지 삼 남매를 데리고 마법 같은 여행을 떠난다. 씻기 싫어하는 아이들과 함께 욕조 속 해저탐험을 하고, 엄마가 아끼던 로열 덜튼 도자기를 깨뜨려 당황하는 아이들을 그림 속 꿈같은 동화나라로 안내한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물고기처럼 헤엄도 치고 비눗방울을 타고 둥둥 날아도 보고 동화 속 마차도 타고 로열 덜튼 뮤직홀에서 메리 포핀스의 공연도 관람한다. 환상의 세계에 다녀온 삼 남매는 잔뜩 흥분한 채로 아빠에게 달려가지만, 지칠 대로 지쳐있는 마이클에겐 아이들의 모험담을 들어줄 여력이 없다. 차갑게 거부당하고 시무룩해진 아이들 옆에 나란히 선 메리 포핀스는 제인과 마이클에게만은 끝내 마법을 보여주지 않는다. 당연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고, 기적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고 하지 않던가.


제인과 마이클이 기적을 마주할 준비가 되는 시점은 극의 결말부다. 대출금을 갚지 못해 결국 집을 비우게 된 이들 남매에게 메리 포핀스는 그들의 수호천사라는 본분에 걸맞은 능력을 보여준다. 예고된 결말이지만 카타르시스는 충분하다. 가족의 위기는 동화적 장치에 의해 해결되고(이런 영화에서 어른의 현실적 시선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건 반칙이다), 대출금 전액을 일시 상환한 뱅크스네 가족은 풍선을 붙잡고 하늘을 난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메리 포핀스가 말하지 않던가. 사람들은 가끔 고민을 너무 많이 한다고. 영화를 보면서도 현실의 이런저런 고민에 묶여 있는 우리는, 아이들이 가진 삶의 태도를 좀 더 자세히 관찰하고 배울 필요가 있다. 영화 중반 절망에 빠진 마이클의 심정을 잘 알면서도 메리 포핀스는 마법의 힘으로 직접 그를 돕기보다 그가 아이들의 태도를 보고 모종의 진실을 깨닫게 하는 길을 택한다. "내가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가 돼버렸다"는 마이클에게 메리 포핀스는 태연하게 대꾸한다. "그게 뱅크스 가문 내력이지." 나라고 다를 게 있을까. 때때로 행복은 치열한 삶의 반대편에서 우산을 타고 내려오는 법. 말도 안 된다며 외면하든지, 아니면 그 우산을 잡고 동화 같은 하늘로 둥실 날아오르든지. 언제나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덧붙임

1964년작 <메리 포핀스>가 당연히 줄리 앤드류스Julie Andrews의 영화였던 것처럼 <메리 포핀스 리턴즈> 역시 당연히 에밀리 블런트의 영화다. 물론 두 배우의 결은 다르다. 줄리 앤드류스의 메리 포핀스는 새침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가 강했던 데 비해, 에밀리 블런트의 메리 포핀스에게선 도도하고 거만한 이미지가 돋보인다. 그리고 둘 모두 원작 소설 속 메리 포핀스의 이미지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다(무엇보다 두 배우 모두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이렇듯 서로 다른 이미지로 묘사된 유모의 매력을 비교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메리 포핀스>에서 굴뚝 청소부 버트 역을 맡았던 딕 반 다이크Dick Van Dyke가 <메리 포핀스 리턴즈>에서는 악질 은행장의 삼촌으로 출연해서 짧은 시간 동안 열연을 펼쳤는데, 찾아보니 줄리 앤드류스에게도 특별출연 요구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떤 이유에서였든 줄리 앤드류스가 이 요구를 고사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전편 메리 포핀스의 후광에 에밀리 블런트의 연기가 조금이나마 가려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