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희, 『새』, 문학과지성사, 1996
남자들은 돈을 벌지 못해 가난해지면 여자들을 때리고 아이들을 내던진다. (127쪽)
내가 없을 땐 외로워서 자꾸 울어대니까 새집에 검정 보자기를 덮어준단다. 그러면 밤인 줄 알고 언제까지나 잠을 자지. (37쪽)
새장 안에는 소꿉놀이처럼 앙증맞게 조그만 좁쌀통과 야채통, 물통 따위가 있었다. 거울도 있었다.
친구하라고 놓아준 거야. 제 동무인 줄 알거든.
새는 거울에 비치는 제 모습을 부리로 쪼고 날개를 퍼덕이며 수선을 떨었다.
바보 새야.
내가 말했다.
(36쪽)
비행기가 떨어졌을 때 나는 태어났다. 아버지는 꽃을 기르고 있었다. 그해 꽃값이 좋았다. 시든 꽃들도 비싼 값에 팔렸다. 온 나라 방방곡곡이 꽃에 뒤덮이고 아버지는 돈을 크게 벌었다. 막 태어난 나는 예쁜 요람을 갖게 되었다. 꽃장수는 떼죽음이 있어야 돈을 번다고 아버지는 두고두고 그 시절을 그리워했다. (148쪽)
집을 나간 김씨 아저씨를 향해 퍼붓는 안집 할머니의 무력한 악다구니도, 연숙 아줌마의 방에서 들리는 길고 긴 기도 소리와 온 집 안을 축축이 적시는 가늘고 검질긴 아줌마의 울음소리도…… (1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