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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Apr 24. 2020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란

펑수화, 『할아버지의 달콤한 유산』, 뜨인돌출판사, 2020

* 쪽수: 216쪽



치매를 앓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기억을 행복한 추억으로 남겨드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몇 가지 심각한 결함을 지닌 가족이 점차 치유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소설은 6학년을 앞둔 소년 '민원'의 1인칭 시점으로 쓰여 있습니다. 가족의 여러 단면을 섬세하게 관찰하는 주인공 소년의 순수한 관점이 소설의 매력을 한층 더해주죠.


표면적으로는 할머니와 아빠 사이의 갈등이 가장 심각해 보이는데, 이들이 허구한 날 싸우는 이유는 다름 아닌 돈입니다. 할아버지의 치료비용을 기꺼이 감당하려는 의사 아빠와 그 돈을 못내 아까워하는 억척스러운 할머니는 서로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아요. 가족들 앞에서 고함을 지르며 할머니에게 대드는 아빠도 훌륭한 위인은 못되지만, 읽다 보면 이 가족이 겪는 심각한 문제는 대부분 할머니의 태도에서 기인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다루는 가족 구성원들의 태도도 어딘가 이상하고 불편하죠.


예컨대 할머니는 과거에 아빠가 가난한 엄마와 결혼하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궁합 점괘를 핑계 삼아 둘을 떼어놓으려고 했다는데, 당시의 아빠는 엄마의 생년월일시를 조작해서 최고의 궁합으로 꾸며내 할머니를 속일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임시방편으로는 기발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에서는 한참 벗어난, 건강하지 못한 방식이죠. 더 우려스러운 문제는 이런 부정직한 태도가 가족들 사이에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싸우고 냉전을 치를 때마다 민원을 이용해서 상대에게 뾰로통한 말을 전하는 어른들의 태도는, 실은 조금도 어른스럽지 못한 거죠.


어른들은 매번 싸웠을 때마다 나 같은 애들을 불러서 이쪽저쪽으로 앵무새처럼 말을 전하게 했다. 엄마랑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모두 뻔히 거실에 앉아서 입만 열면 상대방의 말이 다 들리는데도 굳이 나를 불러 '민원, 아빠한테 가서 전해', '민원, 엄마한테 가서 전해'하는 식이었다. 완전 짜증 난다.(23쪽)


소설의 후반부에는 할머니가 돈에 대해 그렇게 억척스럽게 변할 수밖에 없었던 대단히 신파적인 사연이 등장합니다. 너무 뻔해서 익숙한 드라마 플래시백의 한 장면을 보는 느낌이에요. 하지만 그런 신파에 길들여지지 않은 어린이들에게는 꽤 흥미로운 사연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여간 답이 없어 보이는 이 가족에게 돌파구가 하나 열리는데, 바로 연극입니다. 고등학교 연극 동아리에서 활동 중인 사촌누나의 제안에 따라 가족들은 아픈 할아버지 앞에서만이라도 사이좋은 척 연기를 하기로 합니다. 할아버지가 마음 편히 가신 다음에 다시 싸우자는 황당한 계획이죠. 그 계획은 온 가족이 함께 할아버지의 고향으로 여행을 떠나면서 구체화됩니다.


여기까지 보면 앞으로 이야기가 책 제목과 맞물리면서 어떻게 흘러갈지 대강 짐작이 됩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소중한 가족들에게 어떤 유산을 남겼을까요. 남겨진 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요. 그 모든 것에 앞서 바람직한 가족의 모습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가족관계가 삶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어린이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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