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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May 02. 2020

악의적이지 않은 다수의 차별

펩 몬세라트, 『루빈스타인은 참 예뻐요』, 북극곰, 2014

* 쪽수: 44쪽



루빈스타인은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알아보지 못하죠. 그건 그녀가 세상에 단 한 명뿐인 '수염 난 여성'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발리우스 서커스단의 유명 출연자인 그녀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사람은 코가 긴 파블로프뿐입니다. '코끼리 남자'로 알려진 파블로프 역시 유명한 거스톤 서커스단의 출연자죠. 두 사람의 소수자성은 이 이야기의 핵심고리입니다.


빨강과 검정 배합의 표지 색감부터 매우 강렬한 이 책은 평범한 대다수 사람들의 차별적 시선을 다룹니다. 흔히 비교와 차별의 폭력이 일부 비윤리적인 사람들의 악의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어린이들에게, 일상화된 차별의 위력을 효과적으로 일깨웁니다. 이 책을 읽은 어린이들의 반응은 거의 한결같아요. '사람을 외모로 차별하지 않겠다'는 거죠. 하지만 이 책은 그보다 더 깊은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어요. 적절한 도움이 더해진다면 어린이들은 이 책을 통해 상당히 깊고 논리적인 사고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은, 자신의 수염(소수자성)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당사자인 루빈스타인은 어떻게 느낄까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엔 반드시 단서가 붙어야 해요. 루빈스타인이 어떻게 느낄까에서 끝나면 안 되고 '나라면' 기분이 어떨까를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마이너리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영역에서는 잔인할 정도로 몰지각한 경향이 있어요. 어린이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니 이 부분에 대한 이해를 어른이 도와주면 좋겠죠.


물론 어린이들의 반응은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루빈스타인은 눈에 띄는 수염 덕분에 서커스단에서 가장 유명한 출연자가 될 수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수염을 자랑스러워할 거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이 맥락에서 타인의 시선은 차별이 아니라 선망의 영역으로 넘어가죠. 틀린 건 아닙니다. 어쨌거나 어린이에게는 다양한 해석이 열려있어야 하고, 그중 하나를 택해 자신의 시각을 펼쳐 보인 다음에는 다른 해석을 접해볼 기회도 충분히 주어져야 합니다. 같은 이야기를 읽고 다른 생각의 충돌을 경험하는 것은 독서의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책이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소수자를 바라보는 '맹목적 시선'입니다. 수염 난 루빈스타인의 직업을 유명 서커스단 출연자로 한 것은 물론 19세기 후반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둔 P. T. 바넘의 서커스단 단원 애니 존스를 참조한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에 앞서 타인의 시선에 일률적으로 대상화되고 소거되는 한 인격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죠. 그래서 표지 그림 속 루빈스타인이 자기 수염을 자랑스럽게 드러내지 못하고 가리고 있는 겁니다. 사람들이 '인간 루빈스타인'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고요. 그들이 보는 건 루빈스타인의 대상화된 속성일 뿐이죠. 두 눈으로 똑바로 쳐다보면서도 진짜 루빈스타인의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야기 속 사람들의 맹목은 우리 일상 속 편견과 무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이 맥락에서 루빈스타인은 그리 악의적이지 않은 다수의 묵인 하에 일상화된 차별의 피해자고요. 어린이와의 대화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어려운 말은 다 빼고 담백하게 말해야 합니다. 요컨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폭력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알게 하는 것,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것들이 실은 당연하지 않을 때도 있음을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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