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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May 09. 2020

어린이만을 위한 이야기

알퐁스 도데, 에릭 바튀, 『스갱 아저씨의 염소』, 파랑새, 2013

* 쪽수: 36쪽



동화란 어린이를 위해 쓰인 이야기입니다. 알퐁스 도데의 스갱 아저씨의 염소 또한 그런 이야기죠.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다른 동화와 구별되는 한 가지 뚜렷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건 '어른들의 입장에서 어린이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 책은 '온전히 어린이만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블랑께뜨는 스갱 아저씨의 일곱 번째 염소입니다. 블랑께뜨 이전의 여섯 염소들은 아저씨의 비좁은 외양간이 답답해 산으로 도망쳤죠. 산에는 염소를 잡아먹는 늑대가 삽니다. 블랑께뜨 이전의 염소들은 모두 이 늑대에게 잡아먹힌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스갱 아저씨는 블랑께뜨만은 절대 그렇게 잃지 않겠다고 다짐하죠.


아저씨는 블랑께뜨에게 필요한 먹이와 안식처를 제공하고 정성껏 보살핍니다. 처음에는 부족함 없는 나날이 이어지지만 이내 블랑께뜨도 산으로 가고 싶다고 말해요. 아저씨는 이해할 수 없죠. 염소들이 편안하고 안전한 집을 마다하고 자꾸만 산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는 겁니다. 아직 어린 블랑께뜨가 홀로 산에 가면 갖은 고생을 겪어야 할 것이고, 특히 늑대의 위협에서 단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을 게 뻔하니까요. 아끼는 염소를 그런 위험 속에 버려둘 수 없는 스갱 아저씨는 결국 철없는 블랑께뜨를 가두지만 블랑께뜨는 열린 창문으로 도망쳐 나와 산으로 향합니다.


산으로 온 블랑께뜨는 행복합니다. 집은 분명 아늑했지만 언제나 아저씨의 보살핌에 따라야 했죠. 하지만 이제는 뭐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블랑께뜨에게는 건강이나 안전, 편안함보다 내 욕구에만 전적으로 충실할 수 있는 자유가 훨씬 커다란 행복으로 다가옵니다.


이야기는 행복해하던 블랑께뜨가 늑대에게 잡아먹히며 끝납니다. 갑작스럽지만 그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죠. 교훈적이라 하기에는 꽤나 당황스럽고, 그만큼 인상적인 결말입니다. 만약 작가가 안전하게 보호받는 삶의 가치를 일깨워주고자 했다면 결말은 절대 이렇지 않았겠죠. 아마 갖은 고생 끝에 외양간으로 돌아온 블랑께뜨가 스갱 아저씨에게 용서를 빌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치는 방식으로 흘러가지 않았을까요. 결국 스갱 아저씨의 판단이 옳았고, 그것이 블랑께뜨 자신에게도 최선이었음을 보여줘야 하니까요.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블랑께뜨는 끝까지 늑대에게 저항하다 결국 잡아먹힙니다.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후회하지 않아요. 늑대의 위기는 현실이 되고, 스갱 아저씨와의 갈등은 해소되지 않죠. 결국 <스갱 아저씨의 염소> 이야기는 전통적인 동화 서사의 흐름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왜 염소는 단 한 번의 실수를 죽음이란 대가로 돌려받아야만 했을까요. 아무것도 모르고 천진난만했던 주인공 염소가 늑대에게 잡아먹혀 죽게 되는 이런 이야기를 정말 어린이들에게 읽혀도 괜찮을까요. 작가는 이야기의 결말을 왜 이렇게 썼을까요.


그건 이 이야기가 어른을 위해 쓰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어른들이 이 이야기를 '부모님 말씀 안 들으면 후회할 일이 생긴다'는 식의 교훈을 주기 위해 읽어주지만, 어린이들은 전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어린이들에겐 이 이야기 속 염소의 마음이 너무나 깊이 전해져 오기 때문이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부모님의 합리적 판단보다 때로 나 자신의 솔직한 욕구를 따라가 보고 싶은 마음, 모험 같은 그 호기심 끝에 뭐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보고 싶은 마음 말입니다. 염소는 그 마음을 따라 산으로 갔지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도 않았고, 스갱 아저씨에게 용서를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작가가 이 이야기에 숨겨놓은 핵심 코드예요. 비극적인 결말이지만 적어도 블랑께뜨는 자신의 솔직한 욕구를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당당히 직면하는 길을 갔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온전히 어린이만을 위한 이야기라는 거죠.


어른의 입장에서 어린이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어린이만을 위해 쓰였다는 이 별것 아닌 특징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야기를 매우 특별하게 만들어 줍니다. 예컨대 이 동화는 많은 어른들에게 자신의 빡빡한 양육 방식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마련해주는 듯 보이지만, 그와 반대로 어린이에게는 자유의 가치와 그에 따르는 책임을 막연하게나마 생각해볼 수 있게 해 주죠. 아마 어른들은 이 이야기를 읽어주면서 자신의 기대와 다른 어린이들의 반응에, 그 마음의 깊이에 놀라게 될 겁니다.


누군가에 종속되어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과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벅찬 자유를 온몸과 마음으로 누리는 것, 이 둘 사이의 고민은 어린이에게도 어른에게도 결코 쉬운 주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깊은 생각거리를 어린이에게서 자발적으로 끌어내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죠. 다 읽고 나면 이토록 짧은 이야기 안에 그런 주제를 간결하면서도 인상적으로 버무려낸 작가의 역량에 감탄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말하고 생각하고 주장할 수 있는 자녀를 둔 모든 부모님에게 이 이야기를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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