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리 May 13. 2020

믿음, 엉킨 실타래를 푸는 실마리

이나영, 『붉은실』, 시공주니어, 2017

* 쪽수: 204쪽



주인공 세 친구의 복잡한 사연이 마치 서로 다른 실로 얽힌 실타래처럼 섬세하게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사춘기를 지나는 어린이들의 감정과 고민이 생생하게 담겨있죠. 주인공 세 어린이의 이름은 은별, 민서, 강우입니다. 은별이는 새엄마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초조함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민서는 부쩍 예민해진 단짝 은별이와의 관계가 멀어지면서 생긴 오해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고요. 강우는 완벽하고 강압적인 부모님에게 주눅 들어 있죠. 이야기는 세 친구의 서로 다른 관점을 통해 사건을 교차 서술하는 방식으로 쓰여있습니다.


은별이는 새엄마의 앞에 붙은 '새'라는 말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새엄마와 정서적으로 친밀합니다. 그런데도 곧 동생이 태어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본능적인 위기의식이 찾아오죠. 단짝 민서는 동생이 생기면 찬밥 신세가 될 거라며 은별이의 위기의식에 불을 붙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갑자기 서먹해진 둘 사이 관계는 강우가 등장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오해의 길로 접어들게 되죠. 그렇다고 강우가 둘 사이를 의도적으로 이간질하는 건 아니에요. 알고 보면 강우도 그저 자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분투하는 소년일 뿐입니다.


이 책에는 단짝이었다가 서먹해진 사춘기 어린이들의 박탈감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민서는 은별이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군다고 느끼고, 심지어 강우와 친하게 지내며 자기와의 우정을 배신했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관심도 없던 소연이의 그룹에 끼게 되죠. 은별이는 민서에게 미안해하면서도 마음과 달리 뾰족한 말을 내뱉고는 혼자 당황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없어도 소연이의 그룹에 들어가 잘 지내는 민서를 보며 서운해하죠. 이 둘 사이의 오해와 갈등, 긴장, 그리고 화해의 과정을 보고 있으면 실제로 사춘기 어린이들 사이의 기류 변화를 옆에서 목격하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굉장히 사실적이죠.


한편 강우는 첨단공포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연은 이야기의 결말부에 나와요. 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 나름대로 능동적인 방안을 찾던 강우는 우연히 '아리아드네 뜨개방'에 가게 됩니다. 이 뜨개방의 주인은 바로 은별이의 새엄마입니다. 은별이 엄마는 참 좋은 사람이고, 동시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고민에 직접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정서적으로는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인물이죠. 뜨개방에서 이루어지는 평범한 뜨개질은 강우가 자기 문제를 직면하고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핵심장치입니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암시와 상징이 요긴한 장치로 쓰일 때가 많습니다. 이 책은 그런 장치들을 기초적 수준에서 이해하기에 아주 좋아요. 책 속에서 굉장히 친절하게 안내되어 있기도 하고요. 제목으로 쓰인 '붉은 실'은 이 이야기에서 '인연의 얽힘과 풀림'을 의미합니다. 인간관계라는 게 때로 오해로 얼룩졌다가 다시 화해했다가 하면서 사람을 성숙하게 하는 면이 있잖아요. 이 책은 그런 주제의식을 '실', 그리고 '뜨개질'이라는 장치를 통해 비유적으로 드러낸 거죠.


나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뜨거운 차를 조금씩 마셨다. 시간이 흘러 떨리던 몸이 진정되었다.
"또 엉켜 버렸네. 매듭은 말이야. 실마리를 잘 찾아야 해. 힘들어도 실 끝을 잘 따라가면 되거든."
아줌마가 뜨개질 매듭을 푸느라 낑낑대고 있었다.
'실마리.'
순간 그동안 내가 놓치고 있던 것이 생각났다.
"저 이제 가볼게요."

179쪽


'꽃생강차'도 마찬가집니다. '꽃생강의 꽃말은 믿음'이라고 하는 은별이 엄마의 말은 사실 작가가 독자에게 건네는 힌트이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긴장도가 높아지면서 주인공 어린이들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등장하는 꽃생강차 티타임은, 인물들이 서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경직된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성장하는 발판을 만들어주거든요. 티타임 부분을 읽다 보면 나도 이야기 속 인물들과 함께 뜨개방에서 차 한 잔 하고 싶은 아늑한 기분에 잠기게 됩니다. 저라면 이 책으로 대화를 나눌 때 꼭 차 한 잔을 곁들일 것 같아요.

매거진의 이전글 어린이만을 위한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