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와 글쓰기
정말 SNS는 인생의 낭비일까
우리나라에서 SNS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말은 아마도 알렉스 퍼거슨의 이 말이 아닐까 싶다.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다."
인생의 낭비라니. 내 기억으론 퍼거슨이 저렇게 무자비하게 말하진 않았다. 단지 시간낭비라고 했을 뿐. 그게 그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시간낭비와 인생낭비의 어감이 많이 다르지 않나. 저 말을 처음 번역한 사람이 스포츠 전문 기자였는지 아니면 익명의 네티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짐짓 자기 견해를 보태서 확대 해석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어쨌거나 퍼거슨의 저 말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국내외 유명인이 SNS로 크고 작은 물의를 빚을 때마다 빠짐없이 따라붙으며 말의 위력을 과시했다. 수많은 트위터 이용자들이 저 말을 인용하며 자기네 인생낭비를 앞다투어 생중계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다른 곳도 다 비슷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스토리 그밖에 수많은 플랫폼과 댓글창에는 퍼거슨의 명언을 퍼 나르며 자조와 자기부정의 모순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근데 우리나라 네티즌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할아버지 말을 잘 들었지? 이유 있는 조언도 꼰대질이라며 비웃기 일쑤인 사람들이 웬일로 퍼거슨 할아버지의 별 거 아닌 잔소리를 금과옥조처럼 떠받들게 되었을까.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맹위를 떨치던 2000년대 중반으로 돌아가 보자. 당시 싸이월드의 위세는 수많은 사용자의 허세로 쌓아 올린 첨탑이었다. 셀럽들의 허세글은 두고두고 소환되며 손발이 오그라든다는 수식어를 정착시켰고, 일촌 맺기와 파도타기는 인맥과 영향력을 중시하는 한국형 SNS의 원형을 제공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국내 유입 초기부터 한국인 이용자 수를 가파르게 늘릴 수 있었던 것은 싸이월드와 블로그, 카페 등을 통해 이미 온라인 소통에 익숙해져 있던 네티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한국 네티즌은 담벼락, 피드, 타임라인, 기타 뭐라 부르든 간에 본질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 게시물의 표현양식에만 새로 적응하면 됐다. 그렇게 또 하나의 문화가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 듯 보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SNS는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위험하고 쓸데없고 부끄러운 것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SNS가 허세를 넘어 범죄의 수단으로 악용되며 피해자를 양산하던 즈음에 본격적으로 이런 논의가 생겨났다. 스미싱과 해킹, 프라이버시 침해와 청소년 성매매, 그밖에 온갖 불법 콘텐츠의 유통 경로로 SNS가 부각되면서 여러 사회적 문제의 원흉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꼭 범죄가 아니더라도 SNS 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혐오와 차별, 수준 낮은 담론과 진영논리, 공해에 가까운 정보들과 무제한에 가까운 파급력, 발달한 기술을 도무지 따라잡지 못하는 정보윤리와 문화지체 현상, 그럼에도 이를 제어할 만한 장치나 법률을 도입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제약 등은 SNS에 대한 사회의 피로감을 누적시켰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게 SNS 잘못인가? 죄다 사람 잘못이잖아.
SNS의 폐해만 지적해서 깔끔하게 해결될 문제라면 기꺼이 따르겠지만, 그런다고 나쁜 짓 하던 사람들이 어디 가나.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태연하게 나쁜 짓을 이어갈 게 분명하다. 그러니 SNS를 탓하기보다 제도의 그물을 최대한 촘촘하게 짜서 이용자들의 비윤리적인 행동 패턴을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최선이 아닐까. 실제로 SNS는 그동안 은폐되어있던 어두운 사회의 단면을 고발하는 데에 상당 부분 기여하기도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성폭력을 저지르거나 옹호한 젠더 기득권 집단의 민낯을 낱낱이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SNS의 폭발적인 파급력 덕분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가해자들이 줄줄이 엮여 들어가는 기사를 보면서 '역시 SNS는 인생의 낭비' 운운하는 건 나쁜 짓도 티 안 나게만 하면 괜찮다는 얘기밖에 더 되나. 적절한 사이버 플랫폼이 있었기에 저런 추악한 행동의 흔적들을 포착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는 왜 목소리를 내지 않는가. 그러니 애먼 SNS를 물고 늘어질 게 아니라 질 나쁜 이용자 한 명 한 명에게 제대로 된 법의 심판을 내릴 수 있도록 압력을 넣는 것이 문명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역할이다.
결국 인생이 낭비되는 원인은 SNS가 아니라 사람들 자신에게 있다. SNS는 대다수의 평범한 이용자들에겐 그저 즐거운 놀이터에 지나지 않는다. 뭐든지 자기가 책임질 수 있을 만큼만 가지고 놀면 문제가 없다. 더구나 요즘처럼 단편적 정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퍼지는 사회에서는 SNS에 유통되는 글들이 그 사회의 흐름을 알려주는 중요한 지표가 되기도 한다. 이토록 유용한 글쓰기 도구를 옆에 두고 고작 인생의 낭비 운운이라니. 다 같이 꼰대 코스프레를 하기로 작정한 게 아니라면, 지금부터라도 부디 열린 마음으로 SNS를 적극 이용해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