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리 May 28. 2020

삶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기준

이현, 『푸른 사자 와니니』, 창비, 2015

* 쪽수: 216쪽



『푸른 사자 와니니』는 어린 암사자 '와니니'의 성장담입니다. 주인공 와니니는 용맹한 사자의 전형적 이미지에서 약간 비껴 나 있어요. 초원의 전설로 통하는 할머니 '마디바'를 본받고 싶어 할 뿐, 실제로는 또래에 비해 몸집이 작고 그리 용맹하지도 않고 사냥도 잘 못합니다. 대신 아기자기한 놀 거리를 잘 찾고, 눈과 귀와 코가 밝아 다른 사자들이 놓치는 것을 곧잘 발견해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다른 사자들에게 인정받는 건 무리죠. 허약한 와니니는 어느 날 자신이 곧 마디바 무리에서 쫓겨날 거라는 얘기를 엿듣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날 밤 잠들지 못한 와니니는 침입자의 발소리를 듣게 되고, 자신의 존재감을 무리에 각인시키기 위해 단독 작전을 개시합니다. 그리고 겁에 질린 수사자 두 마리를 발견하죠. 수사자들은 살려만 달라며 빌고, 마음 약한 와니니는 무리를 깨우기 전에 잠시 달아날 시간을 줍니다. 그때 와니니의 친구이면서 무리에서 뛰어난 사냥꾼으로 자랄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말라이카'가 다가와 그 모습을 보게 됩니다. 평소 와니니를 깔보던 말라이카는 혼자서 수사자를 뒤쫓고, 이내 다른 암사자들도 잠에서 깨어나 와니니에게 자초지종을 듣게 되죠. 사정을 알게 된 마디바가 단독으로 행동한 와니니를 꾸짖고 있을 때 멀리서 말라이카의 비명 소리가 들려옵니다. 침입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말라이카는 서서히 죽어가고, 와니니는 그 길로 무리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와니니는 자신이 살려 보낸 수사자 두 마리가 말라이카를 끔찍하게 물어 죽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잠보'와 '아산테'라는 이름을 가진 이 수사자들은, 용맹하기로 소문난 마디바의 영토에 침입할 능력도 배짱도 없었거든요. 잠보는 겨우 두 살이고, 아산테는 다 큰 수사자이지만 어릴 때 밀렵꾼의 총에 맞아 다리를 절게 됐죠. 그날 밤 말라이카를 문 사자들은 난폭하기로 유명한 수사자 '무투'와 그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말라이카도 살아있습니다. 다쳐서 무리에 짐이 된 말라이카는 버림받은 채 형편없는 몰골로 초원을 떠돌고 있죠. 그 사실을 알게 된 와니니는 충격과 실망에 빠집니다. 와니니 자신은 애초에 버림받을 처지였다고 해도, 무리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말라이카마저 쓸모없어지자마자 내팽개치는 마디바의 방식이 더 이상 용맹하게 느껴지지 않는 겁니다. 그렇게 저마다의 이유로 혼자가 되었던 잠보와 아산테, 와니니와 말라이카는 이제 한 무리가 되어 함께 여정에 나섭니다. 상처 입은 사자들끼리 모여 연대를 이룬 와니니 무리는 이 여정을 통해 진정 의미 있는 것들을 깨달으며 성장해갑니다. 특히 동물들의 유토피아로 묘사되는 '언제나 비구름이 머무는 초원'으로 가는 길에 이들이 느끼는 것은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낭떠러지를 넘는 일에 대해서라면 사자는 흰개미만도 못했다.(170쪽)


흰개미는 이야기의 초반에 와니니와 어린 사자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목적지에 닿기 위해 낭떠러지를 넘어야 할 때는 무려 초원의 왕 사자도 못하는 일을 힘 하나 들이지 않고 해내는 동물로 묘사되죠. 여기에 이 이야기의 교훈이 있습니다. 자기 삶의 가치를 바로 세우는 기준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물들만큼이나 다양하다는 거죠. 작고 힘없는 와니니가 어느새 자기 무리를 이끄는 늠름한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삶의 가치를 스스로 세우는 방법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각양각색 통통 튀는 매력들을 지녔으면서도 잘 모르고 마냥 주눅 들어 있는 어린이들에게, 이 책은 '너희들도 각자 자기만의 눈부신 색깔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해주고 있는 거죠. 정말 멋진 메시지 아닌가요.


『푸른 사자 와니니』에는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초원의 법'이 있습니다. 책의 중간중간에 소개되는 초원의 법은 그 안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의 생리를 간결하게 묘사하죠. 야생동물의 본성과 생태계에 관심이 있는 어린이라면 이 책을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후속작도 있습니다. 2019년에는 『푸른 사자 와니니 2: 검은 땅의 주인』이, 2021년에는 『푸른 사자 와니니 3: 새로운 약속』이 각각 출간되었군요. 1편이 워낙 재미있고 인기가 많아서 이어지는 이야기도 참 기대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을 어루만지는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