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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Jun 11. 2020

어린이가 살아갈 미래, 바람직한 세계인의 자세

한윤섭, 『봉주르 뚜르』, 문학동네, 2010

* 쪽수: 215쪽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제11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입니다.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은 제가 굳이 하나씩 설명하지 않아도 책 뒤표지에 발췌된 유영진 평론가의 심사평에 잘 나와있어요.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이 작품의 최고 미덕은 시종일관 현실 아이들의 사고와 시선을 장악한 채 서사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감정의 과잉 없이 서술의 객관성을 유지해 나가는 문장 또한 돋보인다. 그밖에 추리소설적 방식을 차용하여 흥미를 잃지 않게 하면서도 문학적 진정성을 놓치지 않은 점, 서유럽 지역으로 우리 동화의 시공간을 확장해 나간 점 등을 높이 사 심사위원들은 만장일치로 이 작품을 대상으로 결정했다.


이 이야기가 '현실 아이들의 사고와 시선을 장악한다'는 말은, 또래 친구의 영향력이 극대화되는 사춘기 청소년의 관점을 어른의 시선으로 함부로 재단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건 아마 작가의 태도와 관련이 있을 거예요. 한윤섭 작가는 책머리에 어린이들이 이 이야기에서 예의를 배우고 교훈을 얻기보다 그저 재미있게 읽었으면 좋겠다고 적었습니다. 애초에 교훈적 목적이 없다면 이야기 속 어린이들의 삶을 어른의 방식으로 계몽할 이유도 없겠죠. 그럼에도 이 책은 무척이나 교훈적입니다. 때때로 정말 가치 있는 배움은 어른의 의도와 관계없는 영역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웁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프랑스에 사는 한국인 소년 봉주입니다. 프랑스에서 특히 환영받을 이름이죠. 어쩌면 놀림받기 좋은 이름인지도 모르고요. 이야기는 봉주네 가족이 수도 파리에서 중부 지방의 조용한 도시 뚜르로 이사 온 첫날 짐 정리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밤 열 시가 넘어 제 방으로 돌아온 봉주는 전에 살던 사람이 두고 간 낡은 책상 옆면에서 희미한 낙서를 발견합니다. 놀랍게도 한글로 쓰여있죠. 낙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조국, 사랑하는 나의 가족"
분명 한글이었다. 몇 번이나 글자를 다시 읽었다.
이 책상에 왜 한글이 적혀 있지? 이 방에 한국인이 살았던 걸까?
글자 주위를 자세히 살폈다.
'사랑하는 나의 조국, 사랑하는 나의 가족'과 한 뼘 정도 떨어진 곳에서 '살아야 한다'를 또 찾아냈다.(14쪽)


시작부터 아주 흥미롭죠. 이야기는 처음부터 강렬하고 중요해 보이는 단서를 제시합니다. 앞서 심사평에서 이 작품이 '추리소설적 방식'을 차용했다고 했잖아요. 봉주가 핵심 단서를 바탕으로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추리하고, 증거를 수집하고, 퍼즐을 맞추듯 사실의 조각들을 채워나가는 과정은 추리소설에서 즐겨 쓰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다만 추리의 주체가 5학년 어린이이기 때문에 전문 수사기법이 등장할 수 없고, 일어났던 일도 끔찍한 사건과는 거리가 멀다는 차이점이 있죠. 그럼에도 이 이야기는 조금도 시시하지 않아요. 추리의 이면에서 드러나는 진실은 사춘기 소년의 진지한 숙고를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묵직합니다. 그 과정에서 봉주는 국가와 민족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실감하게 되죠. 이 작품이 '문학적 진정성을 놓치지 않았다'는 건 그런 의미입니다. 『봉주르 뚜르』는 동화적 상상력으로 마냥 알록달록하게 치장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머나먼 타국에서조차 분단국가의 특수한 조건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소년들의 삶을 진중하게 추적하는 이야기죠.


소설의 전개는 봉주가 전학 간 학교에서 '토시'라는 일본인 친구를 만나고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점점 흥미진진해집니다. 프랑스의 작은 도시에서 자신과 같은 동양인을 만난 것만으로 반가워하는 봉주에게 토시는 그저 퉁명스럽기만 합니다. 봉주는 그런 토시에게 서운함과 적대감, 경쟁심, 그리고 궁금증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느끼죠. 하루는 학교에서 역사를 주제로 발표를 하는데, 한국의 문화에 대해 발표하던 봉주에게 한 친구가 손을 들고 남한과 북한 중 어디에서 왔냐고 질문합니다. 봉주는 자신이 '당연히' 남한에서 왔다고 답하며, 북한 사람들은 가난해서 프랑스에 올 형편이 못된다고 말하죠. 그때 토시가 낮은 목소리로 묻습니다. "네가 어떻게 알아?"


"가난한 나라 사람이라고 여기 프랑스에 올 수 없을까?"(78쪽)


"넌 네가 북한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얘기하는구나."(79쪽)


"내가 북한에 대해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난 그냥 사실을 말하는 거야."
"뭐가 사실인데? 왜 북한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하는데?"(80쪽)


봉주의 발표에는 물론 허점이 있었지만, 사실 한국에서 나고자란 많은 어린이가 갖고 있는 흔한 편견을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토시는 그 점을 지적한 거고요. 짐작하셨겠지만 추리의 끝에 토시가 북한, 즉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사람이었다는 사실과 모종의 이유로 프랑스에서 신분을 숨기며 살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여러 일을 겪으며 끈끈해진 둘의 우정은 결국 이별로 마무리되죠. 각별한 우정을 간직한 채로 즐겁게 지낼 수 있었던 두 친구가 끝내 헤어지게 되는 결말은 자연스럽게 한반도의 이산가족을 떠올리게 합니다. 봉주는 호기심에 저지른 자신의 행동들이 토시를 도망치듯 떠나게 만든 것 같아 후회하며 눈물을 흘리고, 이야기는 그렇게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습니다.


알다시피 중국, 일본, 러시아, 북한 등 주변국에 대한 한국인의 적대감은 그 역사가 짧으면 몇십 년에서 길면 수백 년에 이르기까지 뿌리가 매우 깊습니다. 때로는 이유 없는 혐오와 맹목적 비하로 이어지기도 하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북한인 줄도 모르는 채로 그곳 사람들의 삶을 함부로 단정 짓던 봉주의 모습은 사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한국인의 자화상입니다. 이 어린이들이 커서 살아갈 사회도 이런 모습이어야 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판적 사고와 논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정당하게 주장하는 법을 배워야 할 어린이들이 그저 일본은 나쁘고, 북한은 불쌍하고, 중국은 질이 낮다는 식으로 가볍게 치환된 이미지를 답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물론 어른들이 먼저 바뀌어야죠. 공부하고, 숙고하고, 토론하고, 행동하는 법을 익혀야 돼요. 저는 이 책이 어린이에게나 어른에게나 그런 자세를 배워나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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