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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May 24. 2017

리더십 없는 아이

묵묵히 제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우리는 아이들에게 리더십을 요구한다. 자신감을 갖고 남들 앞에 서라고 말한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새로운 일에 거침없이 도전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런 삶의 자세가 미래의 성공을 담보한다고 굳게 믿는다.



"왜 그렇게 모든 일에 자신감 없이 못하겠다고, 하기 싫다고만 하니? 네가 뭐가 부족해서. 너 정도면 여건 좋은 거야. 우리 어렸을 때는 훨씬 어려운 환경에서도 다들 성실하게 노력하고 자신 있게 도전하고 부딪쳐가면서 살았어. 너도 도전해. 할 수 있어. 나도 했는데 네가 왜 못하니."


어느 시대에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왔을 것이다. 이전 상황은 지금보다 열악했고, 그 상황을 이겨내고 지금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와 도전이 필요했는지. 그리고 그것은 대체로 사실이다. 그러나 사실이 언제나 유익한 것만은 아니다.


'어른들의 옛날이야기는 언제나 대단하다. 온갖 힘든 일을 의지로 극복해내는 드라마 같다. 하지만 그건 결국 어른들의 이야기일 뿐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일 뿐, 내 이야기가 아니다. 나를 위해 하는 말이라며 어른들이 늘어놓는 삶의 조언은, 사실 공감하기 어렵다. 어른들은 자기네 삶을 통해 이미 답을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그 정해진 답 안에 나는 없다. 있는 것은 어른들의 높은 자의식뿐이다. 나에게 쏟아지는 수많은 조언들 속에서 내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어른들이 스스로를 얼마나 가엽고 애틋하게 여기고 있는가 하는 점뿐이다.'


아이를 향한 어른의 조언들을 무작정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동안의 적지 않은 노력에도, 어른들의 말이 실질적으로 아이들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사실은 지적하고 싶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내용보다 형식의 문제이다.


아이와 대화할 때, 때때로 그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를 대하는 태도와 형식이다. 어린아이를 진심으로 존중하는 태도 속에 이미 삶의 모든 바람직한 가치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를 존중하는 태도는 말하기보다 듣기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 어른만이 진정으로 아이를 위로할 수 있다. 넘치는 자의식으로 자신의 결기 어렸던 시절 이야기를 영웅담처럼 늘어놓는 어른은 어쩌면 처음부터 아이에게 도움을 주는 일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주 편하고 쉬운 방법이 있다. 가만히 들으면 된다. 아이에게는 일침을 가해 깨우침을 주려고 할 필요가 없다. 가만히 듣되, 아이가 필요로 할 때 온화하고 부드러운 말로 답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른들은 아이가 아직 미숙하다는 판단 하에 다양한 충고를 하는데, 사실은 아이들도 대부분의 고민에 이미 나름대로 답을 정해놓고 있다. 그 답을 어른, 특히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어른에게 확인받고 싶어 할 뿐이다. 이때 아이의 감정을 따라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여주면 된다. 미숙하더라도 아이의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수용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반응하면 된다. 너무 격한 공감이나 반대는 좋지 않다.


만약 아이가 자기 입장만 강조하며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에도 가만히, 끝까지 듣고 말없이 끄덕여주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다음 아이의 생각에 반대의견을 표현할 때에는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해야 한다. 아이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단호한 언어로 알려주되, 어른의 생각을 무조건 강요하지는 말아야 한다. 강요할 필요가 없다. 아이의 입장에서, 나에게 큰 의미를 갖는 어른이 나와 반대되는 의견을 갖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커다란 영향력을 갖는다. 굳이 자극적, 강압적 언어로 아이의 의견을 짓누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어른의 의견도 어디까지나 한 개인의 생각임을 분명히 하고, 그것이 아이의 의견과 다르더라도 서로에 대한 존중은 깨어지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게 만들어야 대화가 지속될 수 있다.


아이는 앞에 있는 어른이 나를 존중하는지 눈빛만 봐도 안다. 표정과 말투와 앉아있는 자세를 통해 아주 정확하고 세밀하게 감지할 수 있다. 어른과 아이의 대화는 어른끼리의 대화와 다르다. 아이와 함께 있을 때 어른들은 흔히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소통방식을 취하는데, 이 때문에 아이들은 대화에서 논리보다 감각능력이 더 예민하게 작동한다. 어른이 의식하지 못한 아주 사소한 제스처까지도 아이의 감각에는 섬세하게 포착되어 긍정적 혹은 부정적 신호로 기능한다. 바꿔 말하면 아이와 대화할 때는 특이하게도 말 한마디 주고받기도 전에 결론이 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제 어른들은 이런 특수한 성격의 대화에 적응해야만 한다.



"리더십을 가져야 해. 리더십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야. 어릴 때부터 용기 내서 남들 앞에 서보고 자기주장 펴는 연습도 하고 그러면서 조금씩 생기는 거지. 유명한 사람들 보면 다들 자신감 있고 열정적이잖아. 그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됐겠니? 너도 지금부터 꾸준히 노력하고 모든 일에 열정적으로 나서봐. 지금 부끄럽고 창피해서 못하면, 어른 돼서도 똑같아."


우리는 언제부턴가 인간을 리더와 팔로워로 분류하고, 팔로워보다는 리더의 삶을 추구하게 되었다. 세상이 리더의 이름을 기억하고, 더 많은 가치로 보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모든 사람이 리더일 수는 없다. 만약 내 아이가 리더십 유형에 맞지 않는 아이라면 어떨까. 기꺼이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는 충분한 관심과 배려 속에서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정적으로 확인받고 싶다. 그런데 세상은, 그리고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은, 내가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서 빛나는 모습으로 존재하기만을 바라고 요구한다. 아직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는데, 어느 분야에서든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 분야의 리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 지금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고 다그친다. 그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평범함을 제치고 탁월함을 입증하기 위해 언제 어디서든, 어떤 주제로든 내 의견을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모든 일에 적극적이며 의욕적인 자세로 나서야 한다. 그 결과 모든 친구와 주변 어른들로부터 나 자신의 우수함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 모든 일이 막연하게 좋아 보이기는 하는데, 도무지 나한테는 맞지 않는 느낌이 든다. 나에게 맞지 않는 이 화려한 옷의 이름은 바로, 리더십이다.'


아이에게 리더십이 없다는 것은, 수많은 평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 시대의 어른들은 자기 아이가 리더십을 발휘하는 타입이 아니라는 말을 견디지 못한다. 모욕적으로 느낀다. 왜? 우리가 사는 시대에 리더십이란, 사회의 상위 포지션을 선점하기 위한 바람직한 태도들의 컬렉션 같은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리더십이 없다는 말은, 잘해봐야 커서 근근이 생활을 꾸려나갈 정도의 능력밖에는 없다는 식의 천민자본주의적 결론으로 자연스레 연결된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 아이는 그야말로 난처한 입장에 빠진다. 어른들이 리더십이라 부르는 정체불명의 성격특성을 타고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엉뚱하게도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다. 보통 이런 아이들은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는 어른들의 압박에 시달리다 정작 가질 수 있었던 건전한 팔로워십마저도 놓쳐버리기 마련이다. 묵묵히 제 자리에서 역할을 해내는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자라날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많은 어른들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능력으로 리더십을 꼽는데, 이는 분명 오해이다. 그것도 리더십 없는 수많은 아이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심각한 오해이다. 리더십이 전체 상황을 조율하는 능력이라면, 팔로워십은 제 할 일을 빈틈없이 해내는 능력이다. 이 능력들은 노력에 의해 개선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고, 더군다나 성실한 팔로워의 기질을 지닌 아이에게 억지로 리더십을 갖게 만들 필요는 전혀 없다. 그 둘은 반대되는 것이 아니며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비해 우월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리더십도 팔로워십도 아닌 주인의식이다. 세상이라는 연극 무대 위의 주인공이 아니라, 묵묵히 제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도와야 한다. 리더십이 없다고 해서 삶의 주인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저마다 제 삶의 영역이 있고, 그 영역 안에서는 누구든 제 몫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이들에게 해주어야 할 말은, 리더십을 가지라는 말이 아니라 리더십이 있든 없든 너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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