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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May 31. 2020

미래의 우리를 이해하는 질문

이미솔, 신현주, 『4차 인간』, 한빛비즈, 2020

"야. 우리 10년 뒤에 어떻게 돼있을 것 같냐?"

"뭘 어떻게 돼. 똑같지. 철없고, 할 줄 아는 거 없고, 농담이나 하고."


어릴 적 친구들과 장난스럽게 주고받았던 이 대화의 주제가 과학자들의 연구실에서 진지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줄 그때는 몰랐다. 나중에 뇌과학자와 로봇공학자, 그리고 역사가들의 연구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소개한 흥미로운 대중서들과 지식도서를 몇 권 읽었을 때, 이것이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어렸을 때 하던 호기심 가득했던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4차 인간』 또한 그런 호기심에서 출발한 책 중 하나이다.


나와 친구들의 대화는 우리 자신의 앞날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됐지만, 모든 인간이 자기 앞날만 걱정하는 건 아니다. 개인을 넘어 온 인류가 궁극적으로 나아가는―또는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고 그 가능성을 시험하고 끝없이 토론하는 능력은 오직 인간에게만 있다. 이 능력이 인간의 역사를 지금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인류의 미래에 관한 현재의 논의가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점이 한 가지 있다. 시간이 갈수록 개인의 앞날과 인류의 미래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과학기술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10년 뒤 개인의 미래를 상상할 때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기술의 변화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가 뇌과학자들의 연구실과 기술산업의 최전선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혁신에 대해 일일이 알지 못하더라도, 이미 일상 깊숙이 들어온 기술의 영향을 배제한 채로 논의를 이어나갈 수는 없다.


이미솔 PD와 신현주 작가가 EBS 미디어팀의 기획으로 공동 취재 후 집필한 『4차 인간』은 이렇듯 바뀌어버린 미래 인류에 관한 논의를 기초적 수준에서 친절하게 소개해준다. 동명의 EBS 다큐프라임 <4차 인간>의 내용을 바탕으로 했고, 방송에 안 나온 내용도 일부 실려 있다. 인간 뇌의 작동원리에 대한 흥미로운 가설과 이를 입증하기 위한 다수의 실험이 소개되어 있지만, EBS 다큐프라임의 기획 취지가 일반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 설명하는 데 있는 만큼 전문 지식 없이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다. 다만 그러다 보니 기존 뇌과학 분야의 대중서에 소개된 내용을 단순 반복하는데 그치고 말았다는 점에서 한계도 여실하다.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의 『열두 발자국』, 『1.4킬로그램의 우주, 뇌』, 존 레이티의 『뇌 1.4킬로그램의 사용법』, 데이빗 이글먼의 『더 브레인』과 같은 책들을 이미 읽었다면 이 책을 펼쳐볼 이유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럼에도 이 책이 다른 책과 차별화될만한 부분이 있다면,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된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 사이의 관계에 주목한 점이다. 인류의 미래를 논하는 데 있어서 빠짐없이 강조되는 주제라면 역시 우주에 대한 이해의 확장, 그리고 인간 뇌의 작동 원리에 대한 이해일 텐데 이 책은 특이하게도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천착한다. 우주에 대한 연구가 외부 세계로의 확장을 추구하고 뇌 과학 연구가 인간 내면의 기계적 작동원리(메커니즘)를 파고드는데 비해, 이제 와 인간다움을 새로 규정하고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미래를 예측하려는 시도는 다분히 비과학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바, 제 아무리 과학기술이 날고긴다 해도 현재로선 인간의 미래에 관해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밝혀진 부분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한 예로 뇌과학 이론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인간의 영생―질병과 노화의 기술적 해결―이 가능해질 것인가 하는 물음인데, 대립하는 양측 모두 일군의 과학자로 구성되어 있고 양측 견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 또한 비슷한 수준으로 첨예하게 대립한다. 첨단 과학의 힘으로도 어느 한쪽이 옳다고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의 뇌가 아직은 과학적 이해의 영역 너머에 있기 때문이다. 인류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인간다움'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사뭇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이유다.


기계와 로봇,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알고리즘과 4차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온갖 개념들이 범람하는 시대에 오롯이 인간다움에 집중하고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미래를 읽어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이것을 기술의 끝없는 진보 속에서도 반드시 인간에게 남겨지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 영역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과연 나는 세상의 작동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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