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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Jul 07. 2020

사랑과 낭만의 모양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 창비, 2019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2017년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영화는 미소 간 우주 경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몬스터(또는 은서 동물) 마니아 감독의 작품답게― <셰이프 오브 워터>에는 매우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디자인된 양서류 인간이 도입부부터 등장한다. 아마존에서 포획된 이 양서류 인간은 연구소의 피실험체로 격리 수용되어 있다. 편협한 시각을 가진 연구소 직원이 보기에 양서류 인간은 괴생명체 이상도 이하도 아니겠지만, 애초에 이 영화에선 정상생명체와 괴생명체를 분류하는 과학적 기준선이 존재한 적이 없다. 양서류 인간을 괴물로 정의할 과학적 근거가 없음에도 일말의 주저함 이 그를 해부용 실험체로 쓰자고 주장하는 연구원들의 무감각한 태도는, 공포와 혐오를 경쟁의 동력으로 삼던 냉전 체제의 살풍경을 스산하게 드러낸다.


엘라이자(샐리 호킨스Sally Hawkins)는 이 연구소에서 청소부 일을 하고 있다. 어 적 목에 입은 상처 때문에 말을 할 수 없는 엘라이자는 자신의 언어장애를 정체성의 일부로 안고 살아간다. 우연한 계기로 양서류 인간의 존재를 알게 된 그녀는 그에게 몰래 다가가 조심스럽게 소통을 시도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엘라이자의 언어장애는 이들의 만남과 교류에서 더 이상 장애로 기능하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양서류 인간도 미국식 영어를 소리 내어 말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만, 영화 속 맥락에서 더 핵심적인 요인은 엘라이자의 언어장애를 인지조차 못하는 양서류 인간의 편견 없는 시선에 있다. 그에겐 엘라이자의 언어장애를 '장애'로 인식하는 프레임 자체가 없다. 둘은 곧 사랑에 빠진다.


엘라이자와 양서류 인간(출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이야기의 핵심 재료인 양서류 인간과 엘라이자의 마이너리티는, 정작 당사자인 그들에겐 낭만적 사랑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장애가 아니라 그냥 자연스러운 어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거나 말거나' 사랑하는 것. 알고 보니 이 양서류 인간에게는 놀라운 치유능력이 있는데, 그는 끝까지 엘라이자의 언어장애를 치유하지 않는다. 치유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영화의 결말부에서 그는 치명적 부상을 입은 그녀를 안고 물에 뛰어내려, 그녀가 호흡할 수 있도록 목의 상처를 아가미로 개조한다. 인간사회에 속해있내내 그녀의 마이너리티로 기능했던 목의 흉터가 진정 자유로운 삶의 핵심 요소로 전환되는 순간이다. 물속에선 그 누구도 엘라이자의 장애를 인식하지 못할 것이고, 양서류 인간을 괴생명체로 분류하지도 않을 것이다. 메이저와 마이너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지점. 나는 이 영화에 담긴 전복적 메시지가 촌스럽지 않아서 좋다.


이제 박상영의 연작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 얘기를 해보자. 여기에 실린 네 편의 이야기들에서 1인칭 화자인 '영'은 게이다. 이 문장이 모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주인공―그리고 그에 이입하는 현실의 수많은 일부 독자들―의 다양한 정체성 중 '게이'를 맨 앞에 내세울 권리는 나에게 없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들에 시종 뚜렷이 강조되는 성적 취향을 애써 못 본 척, 부러 뒤로 미루어 위장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 내가 읽은 인상대로 쓰자면, 그는 게이다. 그리고 이 마이너리티가 네 편의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 부품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으니까.
그래서나 그러나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러거나 말거나, 너였다고. 나는 그 말이 좋아서 계속 입 안에 물을 머금듯이 되뇌었다.
―그러거나 말거나.(228쪽)


낭만이란, 이상적인 사랑의 상태나 조건을 이르는 말은 아닐 것이다. 성마르고 서툴렀던 시절을 못내 그리워하며 그때가 낭만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사랑이 빈틈없이 감미로웠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온갖 불완전했던 것들을 용인할 수 있을 만큼은 너그러웠기 때문이다. 낭만의 분홍빛 커튼을 걷어내면, 같은 자리에서 외설과 타락과 불륜까지의 거리는 사실 그리 멀지 않다. 때문에 고정된 개념으로서의 사랑은 그다지 낭만적이지 못하다.


다시 박상영의 대도시 서울로 돌아가 보자. 이 도시에 어지럽게 그려진 사랑은 낭만적인가. 사람들이 흔히 품고 있는 예쁜 사랑의 전형성에 들어맞지 않고, 편견 어린 정상성의 범주에서도 한참 벗어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사랑을 낭만의 영역에 들여놓을 여지도 충분하다. 불완전하고 불안정하기 때문에. 그것을 거창한 마이너리티로 규정하기보다, 그저 작은 물방울처럼 뜻 없이 존재하는 무엇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거나 말거나' 사랑하는 것. 나에겐 이것이 우리 시대에 세울 수 있는 낭만적 기준의 최대치로 느껴진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는 국내에서 개봉할 때 '사랑의 모양'이라는 부제가 추가되었는데, ―이것이 과연 적절했는지 여부와 별개로―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에도 비슷하게 달아봄직한 타이틀이다. '사랑과 낭만의 모양' 정도면 어떨까. 엄밀하게 정형화된 도형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변하고 결합할 수 있는 형태로서의 사랑과 낭만에 대한 이야기들. 「재희」는 스트레이트 여성인 '재희'와의 관계를 통해 주인공 '영'의 캐릭터를 거칠게 표현했고,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은 아직 미숙한 시기에 열병처럼 찾아왔다 그만큼 공허하게 떠나가버린 사랑을 묘사했다. 표제작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묘사하는 감정은 이전 사랑의 경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형태의 사랑이다. 그것이 과연 더 성숙하고 아름다웠는지를 규정하는 것은 적어도 내 몫은 아닐 것이다. 「늦은 우기의 바캉스」는 지난 사랑의 흔적에 관한 이야기, 한 사람의 내면에 인장처럼 각인된 감정과 기억에 관한 이야기이다. 얼핏 시간의 흐름과 인과의 원칙에 맞추어 서술된 것으로 보이는 구성이 책을 덮고 난 뒤에도 긴 여운을 남긴다.


덧붙임 1

이 책에는 퀴어 이슈 외에도 일관적으로 표현되는 정서가 몇 가지 있다. 철저한 자기 객관화를 바탕으로 한 블랙 유머, 그리고 오만한 세상에 대한 냉소로 단단히 무장한 작가 특유의 어법이 이 소설의 문체와 인상을 돋보이게 한다.


덧붙임 2

우리나라 성인 스트레이트 남성과의 관계가 형-동생, 오빠-동생으로 규정되는 순간 온갖 예의와 격식이 휘발되어 버리는 문제를 경험으로 아는 독자라면, 이 책에서 묘사된 게이 남성 간의 대화가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얼마나 성숙한 것인지도 쉽게 알아챘을 것이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도시의 사랑법』에서 사랑을 나누는 남성들은 서로에 대한 형식적 예의를 중요시하는 듯 보인다. 그것이 얼마나 현실을 충실히 반영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내 눈엔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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