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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Jul 10. 2020

친구를 대하는 바른 마음가짐

러셀 에릭슨, 『화요일의 두꺼비』, 1997

* 쪽수: 95쪽



오늘 다룰 책은 유명한 『화요일의 두꺼비』입니다. 먼저 이 책의 제목부터 살펴봅시다. '화요일'과 '두꺼비'의 조합. 어떤가요? 이상하죠. 왠지 전혀 관계없는 두 낱말을 억지로 이어 붙여서 제목을 지은 것 같기도 합니다. 어린이에게 제목만 보고 어떤 내용일지 생각해서 직접 이야기를 만들어보라고 하면 꽤 기발한 줄거리가 나오기도 하죠. 그러고 나서 책을 읽으면 '아, 이래서 제목이 『화요일의 두꺼비』였구나.' 하면서 제목과 주제에 대해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두 단어를 가지고 개연성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것은 초등학생들에게도 꽤 효과적이고 흥미로운 글쓰기 지도요령 중 하나입니다. 책장에서 책 두 권을 골라 무작위로 펼친 쪽의 첫 번째 단어들을 이용한다든가, 낱말 카드에서 두 장을 뽑는다든가 하는 방법을 쓸 수 있겠죠. 어느 정도 훈련이 되면 제시 단어의 수를 늘려도 좋습니다. 주의할 점은 어린이들이 스스로 흥미를 느끼며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흥미가 없는 어린이는 보통 이런 식이에요. "화요일에 두꺼비가 죽었다." 이렇게 한 문장 써놓고는 다했다고 하죠. 이런 식이면 아직 창작 글쓰기를 할 단계가 아닌 거예요. 이야기를 만드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어쨌든 어린이가 창작의 과정에서 스스로 재미를 느끼려면 머릿속에서 흥미로운 가상의 사건들이 일어나야 하고, 이걸 꿰어 맞출 최소한의 논리적, 인과적, 개연적 사고가 가능해야 합니다. 이게 안 되면, 서두르지 말고 어린이 주변의 친숙한 소재에서 글감을 찾아 자연스럽게 쓰도록 하는 게 순서에 맞습니다. 그럼 이제 답을 공개해볼까요.


이 이야기에는 두꺼비 '워턴'과 올빼미 '조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둘은 사냥감과 사냥꾼의 관계예요. 워턴은 조지의 생일인 다음 주 화요일에 잡아먹힐 운명입니다. 오늘은 수요일이고요. 일주일 남짓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거예요. 그러니까 '화요일의 두꺼비'는 두꺼비 자신에겐 굉장히 절망적인 제목인 겁니다.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주인공 워턴은 고모에게 과자를 가져다주기 위해 한겨울에 스키를 타고 길을 나섭니다. 심성이 착한 워턴은 가는 중에 자신과 부딪혀 넘어진 청설모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눈 속에 파묻힌 사슴쥐를 꺼내 주고는 집에서 가져온 따뜻한 차를 나눠마시죠. 사슴쥐는 친절의 대가로 워턴에게 친구를 뜻하는 증표인 빨간색 목도리를 건넵니다. 이 목도리는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돼요. 워턴은 짧은 휴식 끝에 다시 길을 나서고 얼마 뒤에 그만 올빼미에게 잡혀 둥지로 끌려가게 됩니다.


여기서 아주 재미있는 일이 일어납니다. 올빼미가 자신의 먹잇감인 워턴에게 뜬금없이 이름을 묻는 거예요. 그걸로도 모자라 워턴의 이름을 '워티'로 바꾸어 부르겠다며 애칭을 지어줍니다. 워턴도 올빼미의 이름을 묻는데, 올빼미는 이름이 없다고 답하죠.


"이름이 뭐야?"
(……)
"몰라. 그런 거 없어."
"그럼 친구들이 뭐라고 부르는데?"
"난 친구 없어."
"참 안 됐구나."
(44쪽)


이름도 없고 친구도 없다는 올빼미에게 워턴은 '조지'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올빼미가 스스로 생각해낸 이름이긴 하지만, 워턴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 올빼미가 이름을 가질 일은 없었겠죠. 사냥꾼과 사냥감이 처음 만나 하는 일이 서로의 이름 짓기라니, 뭔가 의미심장합니다.


알다시피 모든 이름은 의미가 됩니다. 사물에 원래 주어진 이름(보통명사)이 아니라 나만의 이름을 따로 짓는 이유는, 대상이 그만큼 특별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인 거죠. 서로를 '워티'와 '조지'라고 부르는 순간에 둘은 이미 사냥감과 사냥꾼의 관계에서 반쯤 이탈한 겁니다. 하지만 특별한 이름을 지어 부른다고 곧장 친구가 되는 건 아니겠죠. 친구 사이엔 마음의 교류가 있어야 합니다. 첫 만남 이후 워턴과 조지의 관계 위에 차츰 쌓여가는 것도 바로 서로의 진심이죠. 즉, 이 이야기는 적대적인 관계로 처음 만난 두 주인공이 서서히 친구 관계로 변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면서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이야기는 정말 흔하죠. 대립하는 두 인물의 갈등이 극으로 치닫다가 위기가 해소되면서 새로운 관계로 거듭나는 이야기 말입니다. 아주 많은 버디 무비가 기본적으론 이런 도식을 따르고 있잖아요. 그만큼 익숙한 구조와 흐름 안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라는 거죠. 다만 『화요일의 두꺼비』는 팽팽한 대립에서 오는 긴장감보다는, ―사냥감과 사냥꾼이라는― 극단적으로 기울어진 관계 속에서도 우정이 싹틀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강조한 데에서 차별점을 찾을 수 있겠죠.



그러니까 이 이야기가 워턴이 처한 절망적인 상황의 뉘앙스를 뒤집어서 훨씬 느긋하고 유쾌하게 묘사한 건 당연한 겁니다. 동화책이니까요. 이건 특별할 게 없죠. 이 책의 매력은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캐릭터에 있습니다. 불가능 속에서도 태연하고 능청스럽게 우정을 가꾸어나가는 워턴과 난생처음 친구를 사귀게 되어 기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틱틱거리는 조지의 모습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무척 재미있어 보일 거예요. (알고 보면 이 올빼미는 흔히 말하는 '츤데레' 캐릭터의 전형입니다. 어린이들은 대체로 워턴보다 조지에게 이입하며 연민과 호감을 동시에 느끼죠. 캐릭터의 매력이 이야기의 구조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책을 다 읽은 뒤에 초점을 삽화로 옮겨가 보면 이야기의 주제가 더 직관적으로 이해됩니다. 워턴이 조지에게 처음 잡혀가는 장면에서는 올빼미가 두꺼비를 발톱으로 낚아채 둥지로 향하고 있고, 모든 위기가 해소된 마지막 장면에서는 올빼미가 자신의 등에 두꺼비를 태운 채로 하늘을 날고 있거든요. 앞의 그림은 친구를 내 방식대로 가두기 위해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모습이고 뒤의 그림은 둘이 함께 기분 좋게 날아오르는 모습이죠. 어린이들의 관계에서 자주 관찰되는 모습이기도 해서, 두 그림을 유심히 비교해 보면 진정한 친구가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할 마음의 자세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깨닫고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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