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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을 견인하는 동력

문화의 저류를 형성하는 대중의 힘에 대하여

by 달리

나는 '주류'라고 하면 일군의 전문가 집단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그 일을 업으로 삼고, 또 잘하는 사람들.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고 지나칠 수 없을 만큼 트렌드를 선도하는 사람들이 바로 주류다. 하지만 이런 집단의 권위를 지나치게 추어올리면 자칫 그 밖의 사람들을 변두리로 밀어내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예를 들어볼까.


한국 사회의 주류라면 많은 사람이 정재계의 유명인사들을 떠올릴 텐데, 이들에 대한 동경과 추종은 종종 낯 뜨거울 정도로 적나라한 서울중심주의로 구체화된다. 이데올로기의 규칙은 단순하다. 자본주의 질서 안에서 하위 계층과 차별화하고 상위 계층과 경계 지우기. 개인 차원에서는 행복추구권의 정당한 행사에 지나지 않지만, 거대한 흐름 안에서 이들은 모두 서울중심주의라는 단 하나의 견고한 이데올로기를 공유한다. 이들에게 '잘 사는 삶'이란, 모든 가능하고 안전한 수단을 동원하여 끊임없이 상위 포지션을 점유하는 삶이다. 민족적 규모로 이루어지는 이 행렬에 동참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사각지대로 떠밀리다 못해 아예 사회 밖으로 탈락하는 현상이 가속화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탈락한 이들을 비주류라 칭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당연히 옳지 않다. 이 맥락에서 주류와 비주류의 거친 이분법은 서울중심주의의 눈먼 이익에 종사한다.


비주류의 소외를 심화하는 방향으로 주류 개념을 남용하는 것은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과 긴장을 야기한다.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수년간의 제도적 노력에도 고공행진 중인 강남 부동산 시장을 보라. 이런 현상이 진정 바람직하다고 여길 사람이 한국에 몇 % 나 될까. 하지만 기형적으로 구축된 서울 이데올로기에 무뎌질 대로 무뎌진 사람들은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지 않는 것에도 무척이나 익숙하다. 가격과 가치가 멋대로 널뛰는 세상 속에서 웃는 편은 언제나 판을 쥐고 흔드는 주류다.


하지만 필드가 부흥하기 위해 정말 중요한 건 엘리트 주류의 활약 같은 것이 아니다. 어떤 장르든 부흥의 성패는 주류가 아닌 비주류에 달려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해당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주류 집단의 전문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충분한 직업적 보상이 따를 테니, 평범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들에게 따로 경의를 표할 이유가 없다. 그저 마음껏 즐기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한 분야의 발전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이다. 정치 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직업 정치인의 퍼포먼스가 아닌 유권자의 참여다. 한국 경제 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전경련의 경영방침이 아니라 대중에 의해 돌아가는 수요공급의 톱니바퀴다. 최근 일부 문인들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도마에 오른 한국 문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문단의 창작 관행보다 적극적으로 작품을 향유하는 독자층의 기류가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단언컨대 이는 모든 분야와 장르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장르 불문하고 존재하는 이런 중요한 집단을 한데 묶어 비주류로 퉁치는 것은 그리 효과적인 구분법이 될 수 없다. 그보다 해당 분야의 기반에 흐르는 저류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잘 드러나지 않는 듯해도 밑에서 가장 중요한 토대를 이루며 실제적인 흐름이나 경향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말이다. 이들이 있기 때문에 주류도 형성될 수 있는 것이고, 나아가 그 분야 자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선사시대에선 마이클 조던이 공을 골대에 아무리 많이 던져 넣어 봤자 지금과 같은 찬사를 누릴 수 없다. 농구라는 스포츠를 사랑하는 대중의 저류가 흐르지 않는다면 조던의 퍼포먼스는 아무 의미도 없다.


물론 주류와 비주류의 구분은 여전히 필요하고 또 유용하다. 하지만 거친 이분법보다 섬세한 접근이 요구되는 경우도 많다. 한 분야의 표준화된 규격, 그리고 상호작용하는 매너와 규칙을 만드는 것은 주류 집단의 일이다. 그러나 그 분야 안에서 실제로 활동하면서 번영을 이끌고 그것들의 효용을 입증하는 사람들은 화려함 이면의 저류에 있다. 간혹 주류 집단의 엘리트주의가 이들의 막강한 영향력을 간과할 때도 있고, 대중의 맹목적 지지에 취한 오만한 행태로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도 있지만, 결국 겸허히 제 길로 돌아와 걷게 만드는 힘 또한 저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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