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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제목을 쓰려면

하고 싶은 말에 집중하기, 독자의 호기심 자극하기

by 달리

글에 제목을 붙이는 일은, 그 글이 존재할 이유를 불어넣는 작업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고민이 좋은 제목을 쓰기 위한 출발점이다. 그렇다고 짐짓 근엄하고 묵직한 제목을 생각해내려 애쓸 필요는 없다. 가볍고 산뜻한 글에는 그만큼 경쾌한 제목이 어울리는 법이다. 때로는 짓궂을 만큼 장난스러운 제목이 글의 핵심을 찌르는 경우도 많다.


글의 전체 내용을 포괄하면서 핵심을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제목을 쓰기란 사실 쉽지 않다. 그런 제목을 어렵사리 생각해내더라도 독자의 뇌리에 각인시키기는 더욱 쉽지 않다.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완벽한 제목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럼에도 좋은 제목의 매력은 분명 존재한다.


심너울 작가의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2020)는 제목만 보면 기성세대에 대한 냉소적인 고찰을 모아놓은 수필집 같지만 펼쳐보면 놀라울 정도로 재미있는 SF 단편집이다.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Men Explain Things To Me』(2014)는 일상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여성혐오와 차별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면서 '맨스플레인'이란 용어를 세계적으로 정착시킨 비평 에세이다.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가 구글 트렌드(빅데이터)에 대한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집필한 『모두 거짓말을 한다EVERYBODY LIES』(2017)는 단호한 제목만큼이나 강렬하고 흥미로운 사회과학 서적이다. 김영미 PD의 『세계는 왜 싸우는가』(2011)는 국제분쟁 취재 전문가인 저자가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형식으로 집필한 다큐멘터리다. 이 책들에는 모두 독자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제목이 달려있다. 나는 이런 책들에 호감을 느낀다.


좋은 제목들의 목록은 끝이 없다. 최근 수년간 출판업계에서 이런 반짝이는 책 제목들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이제는 어떤 흐름 같은 게 정착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채사장의 베스트셀러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백세희 작가의 정신과 상담기록이 담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정문정 작가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등등. 제목만 봐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샘솟지 않나. 내가 이 책들을 모두 읽은 건 아니지만, 이들이 인기가 많은 이유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아무리 낮추어 잡아도 제목이 5할 이상 기여했을 것이다.


제목을 자극적으로 짓는데만 경쟁적으로 몰두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제목에 끌려 집어 들었다가 정작 내용에 실망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나저러나 팔면 장땡'이라는 마인드로 글을 쓸 게 아니라면, 제목의 선정성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에 온전히 집중하는 일이다.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그다음 단계다. 이 순서를 혼동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쉽게도 현실에선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클릭수를 늘리는 데에만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듯하다. 그럴 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스스로 질문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적어도 기계적인 조회수를 목표로 삼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흔히 난색을 표하는 단계가 바로 첫 문장 쓰기와 제목 붙이기다. 첫 문장 쓰기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이번 제목 쓰기 단계에서는 두 가지만 기억하자. 내가 하고 싶은 말에 집중하기. 그러고 나서 독자의 호기심 자극하기. 하나 더. 둘 사이의 우선순위를 바꿔 치지 않기. 정말 좋은 글의 제목은 그렇게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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