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도입부를 쓰려면
레일라 슬리마니의 소설 『달콤한 노래』(2016)의 시작은 이렇다.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 짧은 호흡으로 아기의 죽음만을 간결히 전하는 이 두 문장은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장치이면서, 동시에 작가가 독자에게 내미는 강렬한 도전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당연하게도 알베르 카뮈 『이방인』(1942)의 유명한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다. 그러고 보니 카뮈에 대해 과감한 반론을 펼친 카멜 다우드의 소설 『뫼르소, 살인사건』(2014)의 첫 문장은 '오늘, 엄마는 아직 살아 있네.'이다. 정말이지 죽음은 시대를 불문하고 미치도록 매력적인 소재이다.
작가이자 민권운동가였던 제임스 볼드윈의 소설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1974)의 첫 문장은 이렇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본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이 문장이 얼마나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지 알 수 있다. 최은영의 단편 「쇼코의 미소」(2013)의 시작도 매혹적이다. '나는 차가운 모래 속에 두 손을 넣고 검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우주의 가장자리 같다.' 다음 내용이 정말 궁금하지 않은가. 내겐 이런 도입부 이후에 이어질 이야기를 읽지 않고 버틸 재간이 없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첫 문장은 인문학자 강유원의 『책과 세계』(2004)에 나온다. '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의 절대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 명제의 진위 여부에 대해선 별 관심 없다. 난 그냥 저 문장이 책의 맨 앞에 등장하는 게 좋다.
첫 문장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야만 훌륭한 글이 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조지 오웰의 역작 『1984』(1949)에 나오는 첫 문장은 '맑고 쌀쌀한 4월의 어느 날, 벽시계가 13시를 알렸다.'로 그저 평이하다. 책이 다루는 주제를 이미 알고 있다면 저 서늘하고 딱딱한 배경 묘사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도 알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저 문장이 갑자기 엄청난 매력을 갖는 건 아니다. 러시아 혁명을 빗대어 날카롭게 표현한 『동물농장』(1945)은 또 어떤가. '밤이 되자 매이너 농장의 주인인 미스터 존스는 닭장 문을 모두 잠갔다.' 이것 역시 특별할 게 없지만 이야기는 불세출의 역작으로 평가받는다. 요컨대 좋은 첫 문장은 훌륭한 글의 충분조건일 뿐, 필요조건은 아니다.
첫 문장을 잘 쓰기 위해 고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요즘처럼 클릭 한 번으로 손쉽게 글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세상에서는 더 그렇다. 첫 문장과 도입부가 시원찮으면 뒤에 아무리 좋은 내용이 있어도 사람들은 잘 읽지 않는다. 핵심이 되는 사건이나 결론을 툭 던져놓고 그 주제와 흐름을 유지하며 글을 써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글의 콘셉트가 동일하다면 도입부의 패턴을 고정시켜놓고 반복 사용해도 무방하다. 익숙해지면 필자와 독자 모두의 피로감을 줄여주는 좋은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좋은 첫 문장을 찾기 위한 자기만의 루틴을 개발하는 것도 좋다.
나는 글을 쓸 때 우선 떠오르는 것을 빈 곳에 몽땅 풀어놓는다. 아무리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해도 일단 생각이 나면 내 눈에 보이게 활자화해놓는다. 이 단계에서는 아무에게도 글을 보여주지 않는다. 최소한의 개연성도 없고 문장도 너절한 데다가 믿을 수 없는 헛소리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 작업이 끝나면 관련 자료를 책이나 인터넷으로 찾아서 적당히 살을 붙인다. 그러다 보면 또 어지러운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난다. 적고 또 적는다. 이것들을 모조리 쳐내는 건 마지막에 할 일이다. 글에 쓸 자료가 충분히 쌓이면 문장을 다듬으면서 단락을 자연스럽게 배치하고 중간중간 매끄럽게 연결할 지점을 찾는다. 연결이 부자연스러우면 공들여 찾은 자료라고 해도 통째로 버리거나 따로 메모해둔다. 절반 이상이 날아가는 경우도 있다. 관계없는 내용을 억지로 끌어다 붙이는 건 글을 못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은 것 중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보일 첫 문장과 도입부를 고르고 다듬는다. 나만의 첫 문장 쓰기 루틴이다.
글을 많이 읽는 것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독자를 강하게 끌어당기며 화제가 되는 글들을 보면, 대부분 첫마디부터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런 글들을 자주 읽고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균형감각을 기르는 것은 좋은 도입부를 쓰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자신의 취향을 이해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나는 어떤 글에 흥미를 느끼고, 반대로 어떤 글에 금세 흥미를 잃어버리는지 알아야 자기 문체와 스타일을 점차 매력적으로 다듬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 매일 자잘하게라도 글을 써야 한다. 종이에 연필이든, 폰에 메모든, SNS에 푸념이든, 스쳐가는 작은 생각이라도 어딘가에 남겨두어야 글이 되고, 그렇게 자꾸 써야 훈련이 된다. 좋은 첫 문장 쓰기는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쓰다 보면 또 그럭저럭 별 것 아닌 일이기도 하다. 결국 부족한 글을 고쳐가며 나아가는 것이 최선이다. 첫 문장 쓰기 역시 예외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