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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Dec 14. 2020

미래로부터 출발하는 것들

애나 클레이본, 『뜨거운 지구』, 푸른숲주니어, 2020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지나 미래로 흐르지만, 우리 삶의 어떤 요소는 미래로부터 출발하기도 한다. 주로 확실하게 정해진 미래와 관련된 것들이 그렇다. 애나 클레이본의 『뜨거운 지구』는 '기후변화'라는 정해진 미래에 대해 친절하게 알려주는 어린이 과학도서다. 아이들이 미래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로부터 어떤 결론을 얻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결론을 현재의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선명하게 안내한다.


알다시피 기후변화는 과학의 영역에서 논쟁이 끝난, 이미 정해진 미래다. 기후변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할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책에 따르면 2040년 즈음에는 평균 기온이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상승할 것이다. 그리고 이 변화는 지구에 사는 사람들 모두에게 극도로 파괴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이 정해진 미래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정말로 있긴 있는 걸까. 어차피 바꿀 수 있는 건 없다며 손 놓고 있는 대신 뭔가 생산적인 논의를 이어나갈 방법은 무엇일까.


이 책은 개인으로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비행기나 자동차를 덜 타고, 고기를 덜 사 먹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이 훌륭한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의식 있는 개인들의 자발적 연대가 뒷받침되더라도 세계 각국의 정부와 기업들이 변하지 않는다면 기후변화는 더욱 가파르게 진행될 것이다. 한국의 어느 보수 정치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후변화를 '전시체제에 준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탄소 배출 절감은 점진적 합의의 대상이 아니라, 2차 세계대전 때 공장 징발해서 탱크 찍어낼 때처럼 해야 할 과제라는 지적이다. 그가 ―한국 정치인으로서는 드물게―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를 얼마나 절박하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과감하고 발전적인 논의가 국제 정치 영역에서 훨씬 더 활발해져야 한다.


사실 『뜨거운 지구』는 어린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읽기엔 조금은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자기 삶에서 가까운 이야기라고 느낄수록 깊이 빠져드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을 그렇게 느끼려면 아이의 논리적 사고력이 일정 수준 이상 발달해야만 한다.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 문제를 내 일상 속으로 깊숙이 끌고 들어오려면, 그 사이사이 인과의 고리를 아이가 스스로 찾아 메울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집과 차를 맞춤한 온도로 조절해주는 냉난방기에 길들여지고, 끼니때마다 식탁에 올랐다가 이내 쓰레기가 되고 마는 음식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기후변화의 위기를 감지하는 감각기관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그렇다. 어쩌면 이건 앞서 말한 논리적 사고보다도 공감 능력과 공동체적 감수성이 얼마나 예민하게 발달했는지에 달려있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이런 책이 필요하다. 다음 세대를 살아가는 시민의 교양은 '사려 깊은 과학자의 자세'가 될 것이다.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미래에서 출발하여 현재의 기준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또다시 지속 가능한 미래의 비전을 설계하는 자세 말이다. 이에 관한 책을 함께 읽으며 대화로 폭넓은 공감대를 쌓아나간다면, 우리 아이들도 언젠가 기후변화와 같은 굵직한 문제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책임 있게 대응하는 따뜻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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