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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Dec 28. 2020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 이야기

은이결, 『별똥 맛의 비밀』, 별숲, 2020

일단 소재가 좋다. 주인공 고양이의 이름은 '천배'이고, '공만배'는 천배의 주인이자 가족이면서 둘도 없는 친구다. 천배는 만배를 만나기 이전 주인들에게 몇 차례 버림받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기대만큼 예쁘지 않아서, 시끄럽게 울어대서,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서 등등. 만배는 달랐다. 평생을 같이 살자며 천배를 동생처럼 아끼고 예뻐했다. 이야기는 천배가 그렇게 철석같이 믿었던 만배로부터 100일 만에 버림받은 장면에서 시작한다.


물론 만배는 천배를 버린 게 아니라 잃어버린 거였다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름부터 만배와 천배니까. 가장 중요한 인물들의 이름을 한 묶음으로 지어놓은 이상, 만배가 나쁜 마음으로 천배를 버렸을 리는 없다. 잃어버렸거나 아니면 다른 사연이 있거나.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천배는 만배를 향한 복수심으로 불타오르고 이때 엉뚱하게도 하늘에서 불덩이 같은 별이 천배의 이마 위에 떨어진다.


동화책은 도입부의 배경이나 인물 묘사가 조금만 늘어져도 아이들의 흥미가 금세 식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가장 재미있는 소재나 핵심적인 장치가 비교적 빨리 등장한다. 이 책에서도 역시 가장 중심이 되는 소품인 '별똥'이 첫 번째 챕터에서 바로 등장하는데, 별똥을 핥으면 원하는 존재로 변신할 수 있다는 발상이 흥미롭다. 별똥 맛의 비밀을 깨달은 천배는 만배 또래의 아이로 변신하여 차근차근 복수를 해나가기로 결심한다.


이후 천배가 인간으로 변신하여 자기 이름을 '배신만'으로 짓고 우여곡절 끝에 만배의 학교에 다니게 되는 이야기, 그곳에서 의도를 가지고 만배에게 접근하는 이야기, 야구를 좋아하는 만배가 이런저런 사정으로 경기에 참가하지 못하는 이야기, 그러다 갑자기 우연의 일치로 경기에 참가하는 이야기, 그 와중에 천배가 무려 야구 글러브로 변신하게 되는 이야기, 그 밖에도 결말의 반전을 포함한 온갖 이야기가 그야말로 초점 없이 섞여 들면서 이야기는 썩 매력적이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정작 중요한 이야기에는 힘이 없고 몰입도도 떨어진다.


물론 동화책이라고 해서 반드시 한 번에 한 가지의 주제만 다루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오롯이 재미만을 추구하는지, 유기동물과 안락사에 대한 책임을 환기하고자 하는 의도가 조금이라도 있는지, 또는 친구 관계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위로를 주고자 하는지, 아니면 가족에게 진 소중한 가치란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은 건지, 자신감을 가지고 기회를 붙잡는 용기를 말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일종의 판타지 장르물로서 아이들에게 흥미를 심어주고자 하는지, 인물의 매력을 한껏 뽐내는 캐릭터쇼를 펼치려는 건지, 짜릿한 반전의 쾌감을 주려는 건지 등 수많은 요소 중에 적어도 포인트는 분명히 있어야 하고 그 매력을 살리는 방식으로 스토리라인을 이어가야 한다. 아쉽게도 이 책은  모든 걸 시도했고, 정도 길이와 규모의 이야기가 그걸 전부 다 성공적으로 해내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동화의 한계가 아니라, 재미있는 이야기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초점의 부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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