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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Aug 12. 2021

살인을 말하는 어떤 방법

26. 은필락 - 「관람석」(84매)

칼부림으로 시작해서 칼부림으로 끝나는 이야기입니다. 시작과 끝이 그렇다는 것이고, 드라마 자체는 그렇게 잔혹하지 않습니다. 대신 아주 우울하지요.


충격적인 사건으로 시작하는 단편들이 흔히 갖는 문제점 중 하나는 초반의 임팩트에서 오는 서스펜스를 좀처럼 지켜내지 못한다는 것인데, 적어도 「관람석」은 그런 작품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의 긴장감은 시작부터 끝까지 흔들림 없이 유지됩니다. 그건 단순히 칼부림이라는 소재 때문만은 아니에요. 칼부림은 물론 매력적인 소재이긴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소재의 매력을 뛰어넘는 장악력이 있습니다. 전 그 장악력이 작가가 '죽음', 그리고 '살인'이라는 테마를 다루는 솜씨에서 기인한다고 봅니다.


이야기 속에서 명시적으로 일어나는 여러 건의 살인 사건 중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도입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학창 시절 '나'의 눈앞에서 '종하'가 '한석'을 식칼로 찌를 때, 마치 현실과 비현실이 뒤집힌 것처럼 묘사되는 찰나의 감각이 바로 그것이죠. 이건 이 작품이 죽음을 직접적이면서도 노골적인 방식으로 다루겠다고 예고하는 선언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그만큼 강렬하고 충격적이에요. 살인을 목격한 주인공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 사건에서 입은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합니다. 도입부에 공들여 묘사된 살인 장면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죽음의 원형 이미지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죠.


첫 장면의 살인을 불러일으킨 과거 사연은 독자 입장에서 충분히 짐작 가능하지만 자세히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그건 이 이야기가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직접 보여주는 전개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주인공의 비극적인 삶은 살인이라는 예정된 결말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독자는 그 과정을 불안하게 지켜보는 관객의 위치에 놓입니다. (물론 현실에선 비극의 역경을 딛고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두 건의 살인은 구조적으로 같은 사건으로 볼 수 있는 겁니다. 중간에 등장하는 살인도 마찬가지고요. 요컨대 인간은 어느 정도의 극한에 내몰려야 살인이라는 불가사의한 결정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냐는 것이죠. 그 객체가 자신이든 타인이든, 살인은 극도로 자기 파괴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더 큰 파급력을 갖게 되는 질문입니다.


* 소설과 리뷰 전문은 아래 링크를 이용해주세요.



소설 - 「관람석」

리뷰 - 「살인을 말하는 어떤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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