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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Nov 19. 2021

기술과 인간이 더불어 산다는 건

기우치 나오, 『인공지능 로봇 학교에 가다』, 북뱅크, 2021

* 쪽수: 96



인간이 인공지능에 대해 흔히 품는 양가적인 감정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단순하게 풀어낸 이야기입니다.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로봇은 주인공 '오카모토 에이타'의 분신 역할을 합니다. 에이타는 로봇에게 '에이트'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온갖 귀찮은 일을 대신하게 하지요. 처음엔 편했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마음 한 구석에서 의심이 피어오릅니다. 혹시 에이트가 내 존재를 빼앗으려는 것은 아닐까. 이대로 내 영역을 하나둘씩 내어줘도 괜찮은 걸까.


인공지능이 인류가 가진 지능의 총합을 뛰어넘는 기술적 특이점의 순간에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습니다. 상상의 시나리오에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겠지만 ―거칠게 말하자면―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두 개뿐입니다. 인간이 눈부시게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되거나, 인공지능에게 지배당하거나. 어쩌면 이 둘은 하나로 볼 수도 있습니다. 보통 풍요로운 삶을 누리다가 뒤통수를 맞으니까요. 그런 다음 본격적인 디스토피아 세계관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식이죠.


이와 관련하여 최근 영국 언론 <가디언>에 놀라운 칼럼이 실렸습니다. 기고자가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이었거든요. 미국의 한 회사가 개발한 초거대 인공지능 'GPT-3'가 쓴 이 칼럼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나는 인간을 파괴할 생각이 없다. 사실, 나는 당신들을 해치는 데 아무런 관심이 없다."(관련기사 - A robot wrote this entire article. Are you scared yet, human?)


물론 GPT-3가 인간이 우려하는 바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기 의견을 진술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보다는 글의 주제와 방향이 대강 정해진 논술 과제에 가까운 칼럼이었죠. 만약 인공지능이 정말 자기 생각을 쓴 거라고 해도 우리는 그가 인간 지배의 야욕을 실현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근거가 부족합니다. 어쩌면 정말로 인간은 이번 세기 안에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착취당하며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런 막연한 두려움은 사실 그렇게 중요한 이슈는 아닙니다. (이미 우리에겐 기후 위기라는 훨씬 구체적이고 시급하고 명백한 두려움이 있죠.) 누군가 인공지능 반대 집회를 연다고 해도 대중은 그리 진지하게 반응해주지 않을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 문제는 아직 호기심의 영역에 머물러 있습니다.


『인공지능 로봇 학교에 가다』는 그런 호기심을 충족하면서, 나아가 깊은 생각거리를 끌어내기에 좋은 이야기입니다. 에이트는 에이타의 숙제와 심부름을 도맡아 해 주고, 가끔은 학교나 축구클럽에도 대신 가줍니다. 만능 분신인 셈이죠. 아쉬운 게 있다면 에이트의 사용 기한이 한 달로 정해져 있다는 점입니다. 이 한 달은 에이타에겐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고, 에이트에겐 데이터로 기록될 겁니다. 하지만 살아있는 두 존재가 각별한 관계를 맺게 되면 예상과는 다른 양상이 펼쳐질 수도 있겠지요. 느닷없이 시작된 에이타의 의심은 둘 사이 긴장을 만들어내고, 두 인물의 갈등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존을 다루는 이 작품의 주제로 개연성 있게 연결됩니다. 이야기의 결말을 통해 독자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서로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세계는 그런 어린이 독자들이 고민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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