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최애 아이돌의 수상한 고백』은 명랑해 보이는 제목과 달리 기이하고 음산한 톤을 지닌 SF 호러물입니다. 이야기는 어느 유명 아이돌 멤버와 관계된 이들의 비밀스러운 고백을 통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지요. 아이돌은 이 작품의 핵심 소재이자 강력한 구심점이지만 그럼에도 철저히 파편화, 도구화되어 있습니다. 독자는 조각난 증언들을 퍼즐처럼 끼워 맞추며 아이돌을 둘러싼 일들의 내막을 추론해야 하는데 제아무리 정교하게 맞추어 본들 중첩된 현상은 하나의 진실로 수렴하지 않습니다. 퍼즐은 애초에 미로처럼 어긋나도록 설계되어 있고, 독자는 같은 길 위에서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이 최종적인 불가해함이 작품의 인상을 한껏 돋보이게 하죠.
어느 연예 기획사 사장부터 유명 아이돌의 복제 인간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들의 고백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아이돌 산업은 기본적으로 연출된 이미지에 대한 대중의 동경을 기반으로 굴러가잖아요.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는 아이돌 엔터 산업에 깊숙이 관여하는 인물들이 그들 자신의 가장 은밀한 치부를 폭로합니다. 물론 이것은 대중을 향한 폭로가 아닙니다. 서술자가 독자 한 사람을 겨냥하여 본인의 경험담을 직접 전달하는, 일종의 ‘너만 알고 있어’ 트릭이죠. 작품이 독자를 끌어당기는 동력은 이렇듯 ‘내부자의 폭로’라는 형식에서 기인합니다. 호러물의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는 호기심과 긴장감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효율적인 방식이기도 하고요. 톱클래스 아이돌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기본 설정으로 하면서도 관음증적 상상에 매몰되지 않은 점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작품의 독특한 형식이 갖는 강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단순한 스토리라인과 복잡한 스토리텔링의 가파른 비대칭은 또다시 특유의 몰입감을 연출해내지요. 형식적인 면을 걷어내고 보면, 사실 이건 굉장히 직선적인 이야기예요. 일어난 일만을 건조하게 나열한다면 단편 분량으로 충분히 매듭지을 수 있는 이야기이고 소재의 재질도 단편에 더 적합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결국 이 이야기가 장편으로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건 형식적 요인을 빼놓고는 설명할 길이 없어요. 작가는 1회와 2회에서 전체 이야기의 윤곽을 8할 이상 노출하면서도 무려 34회까지 흐트러짐 없는 흡인력을 유지합니다. 독자는 이야기 속 인물들의 고백을 통해서만 조금씩 진상에 다가갈 수 있는데, 그러는 과정에서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인물의 관점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비슷비슷한 에피소드를 서술자만 바꾸어서 몇 번이고 반복하는데도 지루하긴 커녕 더 깊이 빠져들게 되는 것은, 인물마다 사안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관점이 미세하게 달라지기 때문이고요. 결국 여기서는 복잡한 트릭이나 기교보다도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 자체가 독자를 매혹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가 되는 것이죠.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이 이야기는 형식이 곧 작품의 정체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하나만 더 주목해볼까요. 『내 최애 아이돌의 수상한 고백』에는 그 흔한 인용 부호가 단 한 번도 쓰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가지런히 늘어선 문장들의 덩어리뿐이죠. 그건 이 이야기 자체가 이미 인물들의 독백(몇몇 예외가 있습니다)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따옴표로 처리한 대화를 한 번도 쓰지 않은 점은 신선함을 넘어 실험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작가의 고집이나 확고한 자신감으로 비치기도 하고요. 작품이 다루는 소재나 플롯 측면에서 볼 때 이 이야기는 그저 무난하고 평이한 방식으로 쓰는 게 더 자연스러워 보이거든요. 쉽게 말해 이건 <라쇼몽>이 아니고, 「허버트 웨스트 – 리애니메이터」도 아니에요. 그렇다면 ‘최애 아이돌의 일탈’이라는 대중적 소재에 어울리는 익숙한 도구들이 많이 있을 텐데 작가는 오히려 그것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 결과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극도로 절제되고 정제된 문장들로만 채워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독자의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장치로 작동하는 것이죠. 정말이지 당혹스러울 정도로 수상한 자신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