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이준 - 「자매의 탄생」(109매)
길지 않은 분량 안에 여러 가지 생각 거리를 완벽하게 녹여낸 단편입니다. 다양한 주제를 폭넓게 아우르면서도 끝끝내 초점을 잃지 않은 점이 놀랍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는 사랑과 성, 개인의 자유와 권리, 정체성, 그리고 삶의 의미가 모두 하나의 실로 꿰어집니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독자는 인간이란 무엇이며, 특히 여성이란 무엇인지 내내 고민하게 되지요.
'혜진'과 '리아'는 처음부터 자매로 등장합니다. 때문에 독자는 자연스럽게 '자매의 탄생'이라는 제목이 생물학적 차원을 넘어 무언가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것이라 짐작하게 되죠. 제 경우에 그 짐작은 절반 정도만 맞았어요. 저는 혜진과 리아가 혈연으로 맺어진 자매 관계에서 어떤 계기로 이탈했다가 극적으로 귀환하는 구조의 전개를 예상했지만,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질 줄은 몰랐거든요. 독자에 따라선 저와 아주 다르게 짐작하는 경우도 많을 것 같아요.
도입부에 투닥거리며 등장하는 혜진과 리아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현실 자매'라고 무심하게 부르는 틀에 얼추 들어맞는 듯 보입니다. 리아는 언니의 수수한 옷차림을 거침없이 지적하고, 혜진은 얄미운 동생을 뒤로한 채 집을 나서죠. 자매는 떨어져 있을 때에도 서로의 말과 행동에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혜진은 대학 도서관에 도착해서도 리아의 지적이 신경 쓰이고, 리아는 자신의 서랍 속에 섞여 있는 혜진의 싸구려 브래지어가 눈에 밟힙니다. 이렇듯 자매는 성격부터 취향까지 모든 게 정반대인 듯하지만, 자매라는 게 원래 그런 줄만 아는 독자는 아직까지 별다른 이질감을 느끼지 않겠죠. 하지만 상황은 곧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