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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Jan 03. 2022

내 안의 나를 선언하기까지

이재문, 『몬스터 차일드』, 사계절, 2021

* 쪽수: 212쪽



『몬스터 차일드』는 돌연변이 가설을 기반으로 하는 크리쳐 장르물입니다. 이야기는 'MCS'라는 가상의 증후군을 중심 소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MCS의 정식 명칭은 돌연변이 종양 증후군(Mutant Cancerous Syndrome)인데, 이곳 사람들은 괴물 아이 증후군(Monster Child Syndrome)이라고 바꾸어 부릅니다. 이야기 속에서 MCS는 간헐적으로 온몸에 털이 나고 몸집이 커지면서 힘도 몇 배나 강해지는 변이를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세계의 대중은 MCS를 의심 어린 눈초리로 바라보며 시종 경계하고 회피하지요. 기본 설정과 돌연변이에 대한 헐렁한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엑스맨> 시리즈를 떠올리는 독자가 많을 텐데,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보다는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늑대 아이>(2012) 쪽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소수자 담론을 향해 갑니다. 다수와 다른 정체성을 타고났다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배제를 겪어야 하는 주인공이 스스로 가치관을 확립해 나가는 구조 안에서 모든 플롯이 전개되지요. 보통 이와 유사한 작품들의 경우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이 극명하게 갈립니다. 좋은 건 이야기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는 거예요. 여기선 모든 장치가 톱니바퀴처럼 정확히 맞물려 돌아갑니다. 반면에 아쉬운 건 너무 쉬운 길을 간다는 것이죠. 소수자의 자아는 다수의 편견에 대해 딱 두 종류로만 반응합니다. 순응하거나, 저항하거나. 지나치게 도식적이죠. 『몬스터 차일드』는 순응과 저항을 지나 소수자가 자기 정체성을 새롭게 해석하고 수용하는 데까지 나아간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아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표면적인 대립 구도 너머의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결과적으로 MCS는 질병이 아니라 정체성이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병원이 아니라 훈련소이며,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숨기고 부정하기보다 곧게 직시하는 것만이 올바른 해답이라는, 원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결론 앞에 이르게 되죠. 그런데 현실의 문제들이 정말 소수자가 이런 사실들을 몰라서 일어나던가요.


주인공 '오하늬'와 동생 '오산들'은 MCS, 즉 몬스터 차일드입니다. 남매는 평소엔 약으로 증상을 관리하며 그 사실을 숨기고 살지만, 미처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발작을 일으키고 변이를 겪을 때마다 전학을 다녔습니다. 그렇게 일곱 번째로 전학 온 교실에서 하늬는 또 다른 몬스터 차일드 '강연우'를 만납니다. 놀랍게도 연우는 약을 먹지 않고 자신이 MCS라는 사실을 숨기지도 않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교실에서 보란 듯 변이한 뒤 유유히 운동장을 빠져나가지요. 하늬는 그런 연우를 보며 혼란스러워합니다.


하늬와 연우는 다수의 편견에 반응하는 두 타입을 각각 대변합니다. 하늬는 자기 정체성을 다수의 프레임에 끼워 맞추는 타입이고, 연우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타입입니다. 그리고 침묵과 은폐를 강요당하는 어떤 정체성들은 드러내는 것만으로 세상에 맞서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 연우는 주변 사람들의 오해와 불신에도 그저 제 길을 묵묵히 걷는 듯 보이지만, 실은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세상과 싸우고 있는 것이죠. 싸움의 결말은 이 이야기의 결말이기도 합니다. 세상과 연우의 싸움을 지켜보던 하늬는 조용히 연우의 손을 들어줍니다. 그건 하늬 자신의 싸움이기도 하거든요.


하늬가 연우를 만나 성장해 가는 것은 이 작품이 다루는 주제에 대해 작가와 독자가 공유하는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진짜 문제는 몬스터 차일드라는 정체성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있다는 것이죠. 이제 문제의 원인을 밝혀냈으니 주인공이 향해가야 할 곳도 명확해집니다. 하늬는 그동안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 억누르기만 했던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MCS와 화해하기로 합니다. 그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사과이고, 몬스터 차일드로서 살아갈 수많은 날들에 대한 선언이기도 하죠.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은 언젠가 모든 소수자가 갖게 될, 바로 그 언어를 담고 있습니다. 이 간결한 선언을 통해 작품은 의도했던 최종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합니다.


"난 오하늬. 몬스터 차일드야."

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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