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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May 15. 2022

캐릭터의 여백을 메우는 것은

진 켐프, 『내 이름은 타이크』, 창비, 2008

* 쪽수: 195

*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남자아이들끼리 놀다 보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익숙한 말입니다. (남자) 어린이의 행동을 이해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는 말이기도 하고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을 접할 때마다 전 어쩔 수 없이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만약 여자아이였다면?


여자아이들끼리 똑같이 놀다가 똑같은 일이 일어났어도 똑같은 이해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에 따라 다를 순 있겠지만, 전 여자아이의 행동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상대적으로 인색하다고 느낍니다. 어른들은 남자아이보다 여자아이의 문제행동에 더 크고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리고 전 이것이 당연하거나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그래서 더 자주 이런 장면이 제 눈에 띄는 것이겠죠.


여기까지, 제 말에 동의하지 않는 분이 많을 겁니다. 진 켐프의 『내 이름은 타이크The Turbulent Term Of Tyke Tiler』는 그런 분들에게 강력히 권하고 싶은 동화입니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어린이·청소년 문학상인 카네기 메달을 1977년도에 수상한 작품인데, 2022년의 한국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포인트를 짚어낼 수 있습니다. 그건 반갑고도 씁쓸한, 왠지 모순적인 경험이죠.


크리클피트 초등학교에 다니는 '타이크'는 이른바 '정의로운 문제아'입니다. 단짝 '대니'와 어울리며 여러 가지 말썽의 중심에 서게 되지요. 대니가 선생님의 지갑에서 허락 없이 꺼내 온 돈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려다 들키고, 대니의 부탁으로 시궁창 같은 도랑물에 들어가고, 폐공장에 둘만의 아지트를 만들고, 언어장애를 가진 대니를 무시하는 '마틴'을 두들겨 패고, 대니와 같은 상급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교장실에 들어가 시험지를 훔칩니다. 타이크는 전교생을 통틀어 신체 능력이 가장 뛰어나고, 전쟁놀이에서 대장 역할을 하며, 말과 행동이 거칠어요. 친구의 목을 조르며 '네 혀를 가늘게 찢어 새의 먹이로 주겠다'라거나, '너를 죽여서 뼈와 함께 묻어버리겠다'라고 말합니다. 이렇듯 치밀하고 생생하게 구축된 캐릭터는 자연스럽게 독자의 경험과 맞물리며 특정한 이미지를 빚어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작가가 말해주지 않은 어떤 정보까지 포함하게 마련이지요. (이야기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정보로 인해 발생하는 여백은 당연히 독자의 편견 어린 상상으로 채워집니다. 모든 작품이 그래요. 다만 『내 이름은 타이크』에서는 바로 그 여백이 메시지의 핵심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그럼으로써 이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지요.)


이 정도만 해도 이미 심각한 스포일러를 저지른 꼴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니 조금 더 쿨하게 얘기해도 되겠지요. 이 작품의 결말인 14장에는 기발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전까지 고의적으로 언급되지 않은 중요한 정보가 드러나는 순간이죠. 우리는 그걸 그저 기발한 반전이라고 가뿐하게 말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이 발표된 해는 1977년이니까요. 당시의 영국 독자에게 타이크 타일러의 이야기가 얼마나 신선한 충격이었을지, 그리고 그 메시지가 얼마나 강력했을지 상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의 편견을 드러내고자 하는 작품은 많지만 『내 이름은 타이크』처럼 독자를 직접 겨냥하여 뚜렷한 인상을 남기는 동화는 지금도 그렇게 흔하지 않아요.


많은 독자가 작품의 결말에 반전이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는 순간, 감상하는 태도가 일정하게 고정되어 버립니다. 책을 뒤져가며 반전을 암시하는 단서나 복선을 찾아내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반전에 대해 언급하는 이유는 첫째로 이 리뷰가 어린이 독자를 대상으로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반전이 의미하는 바를 빼놓고는 작품을 제대로 소개할 수 없기 때문이며, 셋째는 저도 알고 읽었기 때문입니다. 알고 읽어도 재미있어요. 성에 관한 편견으로 글을 시작했지만 실은 그 밖에도 할 이야기가 많은 작품입니다. 특히 주인공인 타이크 타일러와 대니 프라이스의 관계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소통 방식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지요.


원제는 'The Turbulent Term Of Tyke Tiler'입니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직역하면 '타이크 타일러(또는 개구쟁이 타일러)의 격동의 학기' 정도가 되겠네요. 원제를 소리 내어 읽어보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발음이 있습니다. 번역제에서는 그런 재미있는 요소가 사라져서 아쉽지만, '내 이름은 타이크'도 작품의 내용과 메시지를 깊이 이해해야만 나올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제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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