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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May 09. 2022

정돈되지 않는 감각에 바치는 헌사

피터르 하우데사보스, 최진영, 『그게 사랑이야』, 요요, 2022

* 쪽수: 80



사랑을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저는 '조건 없이 행복한, 또는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사랑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생각해왔는데 모르겠습니다. 이기심과 소유욕을 빼놓고 우아하게 사랑을 정의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성공할 수 있을까요.


사랑을 단 하나의 무엇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는 일은 가능해 보이지 않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딱히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삶에서 느끼는 어떤 감각과 경험은 설명되지 않을 때 더 매력적이기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 볼 때 『그게 사랑이야』라는 제목은 조금 거칠게 들리기도 합니다. 현실에서 누군가 이 말을 그대로 한다면 전 그 사람과 쉽게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아요. 다행히 이건 그림책이고, 이 말을 하는 인물도 동화적 공상 안에 존재합니다. (찾아보니 원제는 『Een zee van liefde』이고 네덜란드어로 '바다와 같은 사랑'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이 말은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기도 합니다.)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이야기입니다. 낭만의 의미를 성애적 관점으로만 파악하는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언젠가 다른 작품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말한 적이 있는데, 낭만이란 결국 우리가 주변의 온갖 불완전한 것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한가를 묻는 말이기도 하거든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불변의 개념으로 정의되는 사랑은 그다지 포용적이거나 낭만적이라고 할 수 없지요. 사랑은 이데아가 아니라 현실의 맥락으로서 존재할 때 아름답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사랑의 의미를 어떻게 전하고 있을까요. "그게 사랑이야."라는 확신으로 가득한 말은 과연 어떤 맥락 속에서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이야기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인물은 배를 타고 여행 중인 한 마리의 펭귄입니다. 펭귄은 곧 곰이 살고 있는 등대 집에 도착합니다. 그러곤 잠깐의 망설임 끝에 사랑을 고백하지요. 곰은 뜻밖의 말에 어리둥절해하면서도 펭귄을 안으로 들이고 여름을 함께 보냅니다. 둘이 함께 보낸 여름의 감각은 책 표지에 훌륭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계절은 가고 이제 펭귄이 떠날 시간이 되었습니다. 곰은 아직 이별을 이해할 수 없지만 떠나는 펭귄을 막을 수도 없습니다. 펭귄이 머물다 간 자리는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지요. 곰은 자신을 사랑한다 말하던 펭귄을 그리워하며 기다립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둘의 온기로 가득했던 집에는 어느덧 차고 쓸쓸한 공기만이 감돕니다. 이 장면을 묘사한 그림들에는 먹먹한 외로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죠.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그림들이기도 합니다. 사랑은 어쩌면 그 대상이 존재할 때보다 부재할 때 더 큰 의미를 갖는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결국 곰은 펭귄을 찾아 집을 떠나 바다를 헤엄쳐 갑니다. 계절은 어느새 눈 내리는 겨울이 되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계절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둘은 함께 지냈던 여름보다 더 많은 온기가 필요해진 겨울에 재회합니다. 그리고 사랑에 대해 대화를 나누지요. 이전에 펭귄은 '사랑을 하면 몸속에 폭풍이 부는 느낌, 배 속이 울렁거리고 발가락이 간질거리는 느낌'이 든다고 했습니다. 곰은 펭귄을 안아 주고 싶고 돌봐 주고 싶다고 말하고요. 펭귄은 그런 곰에게 입을 맞추며 대답합니다. "그게 사랑이야."


『그게 사랑이야』는 정돈되지 않는 경이로운 감각에 바치는 헌사입니다. 사랑은 긴 여정과 같아서, 살다 보면 누구나 사랑을 느끼는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동시에 상대에게 사랑을 표현하고픈 욕구도 자연스럽게 생겨나죠. 하지만 마음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말은 그렇게 효율적인 수단이 되어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랑처럼 이유 없이 복잡하고 자주 혼란스러워지는 감정은 더 그렇죠. 그럴 때 말보다 유용한 것은 직접 부딪쳐보는 용기일 겁니다. 서로 너무나 달라 혼란스러워하면서도 매 순간 끝까지 사랑하기를 주저하지 않은 두 주인공이 그랬듯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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