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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May 28. 2022

어린이가 감각하는 세계의 모습

이반디, 『꼬마 너구리 요요』, 창비, 2018

* 쪽수: 92



꼬마 너구리 '요요'에게 일어난 세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 유년 동화입니다. 제목은 순서대로 「내가 더 잘할게」, 「새해」, 「정어리 아홉 마리」이고요. 여린 문장과 포근한 일러스트가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근사한 작품입니다. 아마 이 책을 일러스트 이미지로 기억하는 독자도 꽤 많을 거예요.


유년기 어린이의 생각과 감정이 꾸밈없이 담백하게 그려져 있는 작품입니다. 어린이가 감각하는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그 속에서 어린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경험하고 느끼는지 정말로 궁금하다면 이런 동화를 읽으면 됩니다. 전 『꼬마 너구리 요요』를 읽고 나서 어린이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요.) 어린이의 세계에는 어른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온갖 논리와 감정과 규칙과 기준이 존재하고, 그건 어른이 함부로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에요.


「내가 더 잘할게」에서 요요는 엄마가 데려온 길 잃은 아기 늑대 '후우'와 친해지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후우는 요요의 친구인 흰곰 '포실이'에게만 웃어주지요. 후우는 주로 웃음이나 울음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아기입니다. 요요는 답답하고 서운하면서도 후우의 마음에 들기 위해 계속 노력합니다. 독자는 조바심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끼는 요요의 모습을 보게 되지요. 그러나 후우는 끝내 요요에게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후우는 무조건적인 이해와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아기이지만,  요요도 아직 어리긴 마찬가지니까요. 이 모든 일이 그저 속상하게만 느껴지겠지요. 그럼에도 요요는 더 어린 존재를 위해 한 발 물러서는 배려를 잊지 않습니다.


사실 이런 장면은 그리 낯설지 않아요. 많은 어린이가 자기보다 약하고 어린 존재에 대한 배려를 배우기도 전에 먼저 실천하거든요. 어린이들은 복잡한 이유를 따져 묻기보다 그냥 옳다고 믿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익숙합니다.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너무 당연해서, 다른 이유를 찾을 필요를 못 느끼는 것이죠. 성향상 안 그런 것 같아 보이는 어린이도 분명히 그런 기준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그저 알아보기만 하면 됩니다.


이 이야기의 제목으로도 쓰인 '내가 더 잘할게'라는 말은 당연히 요요의 것이겠죠. 딱히 잘못한 것이 없으면서도 더 잘하겠다고 다짐하는 요요의 말은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사람들은 흔히 어린이가 서툴고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보면 어린이만큼 타인에게 열려있는 존재는 드물어요. 상대의 약점과 허물을 다 알면서도 오히려 내가 더 잘하겠다고 말하는 요요의 모습은 실은 거의 모든 어린이가 가진 가장 본질적인 속성을 조명하고 있는 것이죠.


「새해」는 처음으로 새해맞이를 하는 요요의 짧은 여행기입니다. 요요의 이웃들은 모두 새해맞이로 한창 분주합니다. 음식을 준비하고, 대청소를 하고, 새 옷을 입고, 연하장을 보내고, 소원을 빌러 산꼭대기에 갑니다. 요요는 바쁜 이웃들을 보면서 새해가 아주 특별하고 대단한 손님일 것이라 짐작합니다. 이야기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평화롭습니다.


「새해」는 어린이가 자신을 둘러싼 미지의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처음 맞는 새해에 대해 알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엄마에게 물어보는 것일 텐데, 요요는 그렇게 하지 않지요. 대신 직접 밖에 나가 이웃들을 관찰하면서 경험의 조각들을 맞추어 나가는 방법을 택합니다. 그렇게 해서 형성된 이해는 비록 통합된 지식으로서는 불완전할지 모르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취로 유년의 기억에 자리하겠죠.


이 이야기에는 눈여겨볼 지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어린이와 함께 있는 공간에서 어른들이 흔히 사용하는 화법에 대한 지적입니다. 새해를 맞아 새 옷을 입은 토끼 '쫑아'는 요요에게 넌 새 옷이 없냐고 묻습니다. 그때 쫑아 엄마가 말하지요.


"누구나 형편이 좋은 건 아니야."
토끼 아줌마는 마치 거기에 요요가 없다는 듯 말했어요.

41쪽  


현실에도 이런 어른이 정말 많지요. 옆에서 어린이가 버젓이 듣고 있는데도 당사자에게 실례가 될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어른끼리 하는 얘기를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고(딱히 어려운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전 좀 신기합니다), 선의에서 하는 말이니 괜찮을 거라고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을 거예요. 대부분은 들어도 상관없다는 식이고요. 뭐가 됐든 심각한 결례입니다. 어른들은 어린이 앞에서 좀 입조심을 할 필요가 있어요.


「정어리 아홉 마리」는 요요가 위기에 빠진 산쥐 왕자를 구하는 이야기입니다. 산쥐 왕은 산쥐 왕자가 더하기를 배운 것을 축하하기 위해 잔치를 열었습니다. 산쥐 왕은 숲 속 동물들 앞에서 왕자의 덧셈 실력을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왕자는 자물쇠 하나와 구두 하나를 더하는 문제와 사과 세 개와 사과 두 개를 더하는 문제의 정답을 맞혀서 축하를 받지만, 푸른 정어리 네 마리와 노란 정어리 다섯 마리를 더하는 문제에서 막힙니다. 양손의 손가락이 각각 네 개뿐이라 여덟까지만 셀 수 있기 때문이죠. 산쥐 왕은 틀린 답을 말한 산쥐 왕자를 숲 속 동물들 앞에서 거칠게 다그치며 몰아세웁니다. 산쥐 왕자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다시 여덟까지 세고 있을 때 요요가 다가와 손가락 하나를 펴서 내밀어줍니다. 그제야 산쥐 왕자는 문제의 정답을 맞힐 수 있게 되지요.


이 이야기에서 산쥐 왕과 요요는 대조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산쥐 왕은 자기 체면을 우선시하는 어른의 방식을, 요요는 위기에 공감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어린이의 방식을 각각 대변하지요. 물론 현실에서는 어른과 어린이의 방식이 언제나 이런 식으로 양분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현실을 일대일로 반영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어요.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고, 그런 점에서 볼 때 「정어리 아홉 마리」는 분명 의미가 있죠.


모든 사람은 어렸을 때의 기억을 어떤 식으로든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기억이 바로 지금의 어린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할 때에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봐요. 모든 어린이가 『꼬마 너구리 요요』 속 등장인물 같지는 않더라도,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최소한 그들에게 다가갈 때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과 태도를 배울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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