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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Jun 21. 2022

판타지에 대한 판타지

히로시마 레이코,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 길벗스쿨, 2019

* 쪽수: 148



최근 수년간 소설로 출간된 작품 가운데 주목할 만한 한국 판타지를 고르라면 많은 사람들이 『달러구트 꿈 백화점(2020)을 첫 손에 꼽을 겁니다. 서점가를 강타했다는 진부한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정도로 선풍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죠. 그러다 보니 이 작품이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은지 모르겠다는 말들도 종종 나왔습니다. 이것 역시 자연스러운 반응의 일부입니다. 작품의 흥행 요인이 모든 대중에게 빠짐없이 납득되는 경우란 있을 수 없으니까요.


장르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일반적으로 그 안에 속하는 작품들에 일정한 기대나 편견을 불러일으킵니다. 때문에 장르 포지셔닝은 사전에 타깃 독자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지요. 독자는 책을 펼치기 전에 그것이 대강 어떤 류의 이야기인지 알려주는 라벨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장르는 그럴 때 요긴하게 쓰이는 도구 중 하나죠. 학원물, 우화, 괴담, SF, 판타지, 미스터리, 호러, 스릴러와 같은 카테고리는 개별 독자가 의식을 하든 하지 않든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는 틀입니다. 많은 경우 둘 이상의 장르가 혼합되는데 그럴 때조차 독자는 가장 짙은 색채를 쫓아 장르를 특정하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곤 하지요. 이렇듯 장르는 하나의 이야기를 압축하고 요약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그중 동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장르가 바로 판타지입니다. 단순하게 분류하자면 동화의 절반은 다 판타지예요. 판타지 요소를 빼놓고는 동화가 어린이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방식을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최근 이 분야에서 다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하고요. 다만 아직까지는 아동문학에서 판타지 장르론을 소홀히 하거나 지난 세대에 이미 충분히 논의된 흐름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이야기에 전제된 세계관을 파악하는 메커니즘에서 어린이는 대체로 어른보다 유연합니다. 어른의 눈에 터무니없어 보이는 설정이 어린이에게 무리 없이 스며들 수 있는 것은 그런 사고의 유연함 덕분이죠. 바꾸어 말하면 판타지 동화에 대한 인식 측면에서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어느 정도 평균적인 온도차가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어른들은 어린이가 즐겨 읽는 판타지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을 때가 많지요. (간혹 『해리포터』 이후로 판타지 작품을 보는 기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졌다고 하는 경우도 있던데 그럴 리가요.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은 그런 온도차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모범적인 예시입니다. 지금까지 거의 어린이 독자들의 호응으로만 시리즈를 확장해 온 작품이거든요. 2022년 4월 기준, 일본에서는 17권까지 나왔고 한국에는 14권까지 나와 있습니다. 2020년부터는 TV 애니메이션으로도 방영되고 있고요.


설정은 간단합니다. '전천당銭天堂'은 하늘에서 내려온 동전을 받는 가게라는 뜻입니다. 가게 주인 베니코는 매일 뽑기로 그날의 동전을 정합니다. 그러면 그 동전을 가진 손님이 운명처럼 가게에 찾아와 마법이 깃든 과자를 사 갑니다. 과자는 얼핏 손님이 처한 상황에 꼭 필요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사건을 일으키며 독자를 흥미진진한 판타지의 세계로 안내하지요.


설정만 보면 구병모의 『위저드 베이커리』(2009)나 김리리의 『만복이네 떡집』(2010)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읽어보면 질감의 차이가 느껴질 겁니다. 『이상한 과자 가게 전천당』은 짧은 에피소드 형식으로 짜인 이야기라 한 편 한 편의 호흡이 가볍고 경쾌합니다. 그에 비해 『만복이네 떡집』은 일관된 주제 의식이 시리즈를 관통하고 있고, 『위저드 베이커리』는 사건도 어둡고 주제도 묵직하죠.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판타지라는 하나의 경계 안에서 공존하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 밖에도 찾아보면 비슷한 설정으로 색다른 판타지를 선보이는 작품들이 아주 많을 거예요. 이분희의 『한밤중 달빛 식당』(2018), 김용세와 김병섭의 『신기한 맛 도깨비 식당』(2022)도 설정으로만 보면 닮은 데가 있네요.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이 중에서 어떤 작품은 교과서에까지 실리며 권장도서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반면, 어떤 작품은 자녀를 둔 어른들 사이에서 꽤 진지한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들 모두가 이 작품들을 정독한 끝에 둘 사이에서 문학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했다는 뜻일까요. 그게 아니라면 이제 판타지라는 장르에 대해 한번쯤 재고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은 아닐까요. 어린이가 책에 푹 빠져 있는데도 그것이 판타지라는 이유만으로 되려 마음 한 구석이 불안했던 기억이 있다면, 그 불안이 일종의 '판타지에 대한 판타지' 때문은 아니었을지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판타지는 결코 어린이를 해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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