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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Jul 06. 2022

작고 여린 존재를 향한 다정함

이미례, 『시계 수리점의 아기 고양이』, 리틀씨앤톡, 2020

* 쪽수: 140



이미례의 『시계 수리점의 아기 고양이』에는 파스텔 톤의 일러스트와 잘 어울리는 귀엽고 아기자기한 동화 다섯 편이 실려 있습니다. 그중 세 편에 고양이가 등장하고요. 디테일에서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다정함이 이 안에는 담겨 있습니다.


첫 작품 「쪼쪼그만 녀석들」은 이 책에 실린 이야기 중 가장 예스러운 작품입니다. 키로 자존심 대결을 하는 두 어린이가 싸웠다가 화해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요. 3학년 '재기'는 친구가 파마를 한 뒤 키가 커 보이자 똑같이 파마를 합니다. 같은 반 '찬수'는 키높이 운동화를 새로 사서 신고 오고요. 두 친구는 전교생 운동장 조회에서 누가 앞에 서느냐 하는 문제로 거칠게 몸싸움을 벌입니다. 선생님은 도토리 키재기라며 두 어린이의 머리를 차례로 쥐어박지요. 문제는 이런 묘사가 어린이 독자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현실과 너무 많이 동떨어져 있다는 겁니다. 제 감각으로 운동장 조회는 이제 sf에나 나올 법한 설정이거든요. 어린이의 폭력에 대한 선생님의 대응도 너무 안일하고요. (정도는 다르지만 「다복이의 바다」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보입니다.) 이야기는 이 모든 헐렁함을 동심의 낭만으로 가뿐히 포장해버립니다. 그리고 손쉬운 결말은 언제나 기다란 아쉬움을 남기지요.


아쉬웠던 첫 작품에 비해 다른 네 편의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다 좋습니다. 「노랑 비누 이야기」는 귤향이 나는 노랑 비누가 공원 화장실에서 겪은 일을 직접 들려주는 형식으로 쓰여 있습니다. 몸에서 나는 거품으로 다른 존재를 깨끗이 씻어주는 비누는 이타심을 말하기에 좋은 소재지요. 노랑 비누는 상처 입고 찾아온 노랑 고양이를 위로하고 치유하며 친구가 되어 줍니다. 전 무엇보다 노랑 비누와 노랑 고양이의 만남이 주는 선명한 색감이 좋았어요.


「돌멩이와 솔방울」은 2학년 '용희'가 하늘나라에 있는 아빠에게 보내는 독백입니다. 엄마는 용희가 받아쓰기에서 백 점을 받아야만 오후에 축구를 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아쉽게 하나를 틀린 용희는 축구를 포기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나게 됩니다. 고양이는 용희가 건넨 솔방울로 놀라운 드리블 기술을 보여주지요. 이야기는 축구에 푹 빠진 유년의 실루엣에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포개어 독자의 공감대를 폭넓게 이끌어내고 있습니다.


「다복이의 바다」는 2007년 태안군 앞바다에서 일어난 기름 유출 사고를 모티프로 한 작품입니다. 이야기는 발달장애를 지닌 '다복이'가 수업 시간 중에 교실에서 사라지면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사라짐'의 모티프는 기름 유출로 검게 그을린 바다에 그대로 오버랩되지요. 우리가 알던 바다는 그때 한 번 사라졌습니다. 이를 강조하듯 다복이는 미술 시간에 공들여 그린 바다 그림을 검은색 크레파스로 새까맣게 덧칠합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낼 수는 없겠죠. 이 작품에서 '되찾음'에 대한 희망은 어린이들이 함께 검정 크레파스를 손톱으로 긁어내는 모습으로 가시화됩니다.


표제작 「시계 수리점의 아기 고양이」는 201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 당선작입니다. 졸고 있던 시계 수리점 할아버지에게 말하는 아기 고양이가 찾아옵니다. 갓 젖을 뗀 아기 고양이는 엄마와 빨리 멀어지고 싶지 않다며 공원 시계탑의 시계를 천천히 가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다 이번엔 겨울을 넘긴 자기 모습을 엄마에게 어서 보여주고 싶다며 시계를 빨리 가게 해달라고 하지요. 할아버지는 아기 고양이의 애틋한 변덕에 조용히 맞장구를 치며 위로를 건넵니다. 여린 동심과 다정한 어른의 만남에는 보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드는 힘이 있지요. 흰 겨울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마냥 시리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렇듯 시계 수리점에 감도는 다정함이 마치 봄을 앞당기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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