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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Oct 03. 2022

그릇된 신화에 대한 아이러니

최양선, 『몬스터 바이러스 도시』, 문학동네, 2012

* 쪽수: 232



독자가 옛날 작품과 요즘 작품을 가를 때 사용하는 기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저는 대략 2010년대 이후에 나온 작품을 요즘 작품이라고 간주하는 편입니다. 느슨한 기준이죠. 그러다 보니 구체적인 독서 경험에 있어선 이게 잘 맞지 않는 경우도 흔합니다. 2010년대 이후 작품들 중에는 종종 믿을 수 없을 만큼 업데이트가 안 되어서 나오는 작품도 많거든요. 일일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전 요즘도 자주 놀랍니다. '이런 이야기가 책으로 나온다고?'


오늘 소개할 최양선의 『몬스터 바이러스 도시』는 다행히 그런 작품은 아닙니다. 다만 옛날 작품과 요즘 작품을 가르는 경계나 기준이 되는 요소들에 대해 많은 생각거리를 남기지요. 제11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우수상을 받고 2012년에 처음 출간되었으니 제 기준에서는 요즘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어떤 지점에서는 굉장히 '옛날'스러워요. 제 생각에 이 작품은 현실과 픽션, 픽션과 현실의 관계가 어떤 과정을 거쳐 끊임없이 달라지는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시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품을 읽는 동안 선천성 신체 질환이나 장애를 가진 어린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작품에서 어른에 의해 자기 시간을 통제받는 어린이는 '난쟁이증 몬스터 바이러스(NMV, Nanism Monster Virus)'라 불리는 증상을 겪게 되는데요. 이 증상을 묘사하는 작품의 톤은 이렇습니다. 참고로 '버드'는 이 작품의 서브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어린이 캐릭터이고, '다반'은 버드의 아빠입니다.


버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다반은 위에서 아래로 버드의 몸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듬성듬성 빠져 버린 머리카락, 뒤틀린 얼굴 뼈, 물고기처럼 튀어나온 눈동자, 뭉툭한 코, 갈색빛이 도는 입술, 말라비틀어진 팔과 다리, 열세 살 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작은 몸.
버드는 아빠의 눈빛에서 수많은 감정을 읽어 나갔다. 죄스러움, 미안함, 두려움, 실망, 흉측함.

33쪽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난쟁이처럼 몸이 작아지고 괴물처럼 흉측하게 변한다고 해서 난쟁이증 몬스터 바이러스(Nanism Monster Virus), 줄여서 몬스터 바이러스 또는 NMV라고 칭했다. 마치 몸의 모든 수분이 말라 버린 듯 수축되고 비틀렸다. 눈물도 말라 인공 눈물을 넣어 주어야 했다. 특이하게도 이 병은 아이들에게만 발생했다.

35쪽


물론 이 작품이 'NMV에 감염된 아이'를 노골적으로 비하하거나 혐오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NMV에 걸린 자식을 바라보는 아빠의 시선에 나타난 감정은 명백히 죄책감, 두려움, 혐오감이죠. 그렇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럼 앞으로 이 이야기는 어떤 결말을 향해 나아가야 할까요.


1. NMV에 감염된 아이가 씻은 듯이 낫고 가족과 함께 행복해진다.

2. NMV를 바라보는 인물들의 관점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답은 말할 것도 없이 2번입니다. 만약 2022년에 나온 작품이 특별한 의도 없이 1번 결말을 택한다면 그건 정말 심각한 문제예요. 어린이가 자신의 장애, 또는 그와 유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일련의 특질들을 죄의식으로 연결 지을 수 있음을 그냥 심플하게 인정해버리는 일이니까요. 죄의식을 떨쳐버리기 위해선 사회가 허용하는 정상성 범주 안으로 편입되기 위해 고군분투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러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독려하는 결말이 바로 1번입니다. 10년 전에 나온 『몬스터 바이러스 도시』가 택한 결말이기도 하지요.


물론 이 작품의 초점은 장애가 아닙니다. 사실 여기에서 NMV는 SF의 장르적 색채를 강화하는 소품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보다 중요한 메시지는 어른이 자기네 욕심을 채우려 타인을 이용하는 현실, 어른에 의해 철저하게 통제되는 어린이의 불행, 그것을 딛고 나아가는 어린이의 주체성 같은 것들에 있죠. 그리고 이런 메시지들이 익숙한 SF 클리셰들에 능숙하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매끄럽게 쓰인 작품이에요. 하지만 그걸 알고 봐도 끝내 달라질 수 없는 파편화된 인상이 이 작품 안에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전 그게 10년 전 한국 사회에서 무난하게 받아들여졌던 어떤 관성적 사고를 반영하고 있다고 봐요. 그 관성적 사고란 다름 아닌, '장애는 극복될 수 있으며, 극복되어야만 한다'라는 신화입니다. (혹시나 해서 덧붙이자면, 처음부터 재난이라는 소재로 접근하면 이야기는 또 달라집니다. 이 이야기는 장애를 연상케 하는 설정을 재난처럼 다루고 있어서 이질감이 드는 것이죠.)


돌이켜 보면 이건 대단히 중요한 변화입니다. 10년 전에는 저런 믿음을 무의식에 깔고 있는 작품이 어린이문학상을 받았어요. 오해의 여지를 줄이기 위해 분명히 해두자면, 이 작품이 상을 받을 정도로 잘 쓴 작품이 아니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잘 쓴 이야기이고 장르에 대한 이해에도 충실한 좋은 작품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아무리 잘 써도 장애를 연상케 하는 설정을 이런 식으로 쓰면 그거 하나로 탈락입니다. 적어도 전 그럴 거라고 확신합니다.


결과적으로 『몬스터 바이러스 도시』는 신자유주의 신화에 대한 인간들의 허울뿐인 욕망을 지적하고 있는 이야기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장애에 관한 그릇된 신화를 답습하고 마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성취가 뚜렷한 만큼 한계도 명확한 작품인 것이죠. 저는 그래서 이런 작품이 두고두고 읽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0년대 초반의 한국 사회를 부분적으로 스케치하고자 할 때 어린이 문학 분야에선 이러한 시사점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중요한 표지가 되어주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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