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리 Nov 20. 2022

맛있는 것을 함께 먹는다는 건

지안, 『오늘부터 배프! 베프!』, 문학동네, 2021

* 쪽수: 104



제22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지안의 『오늘부터 배프! 베프!』 는 '밥'과 '친구', 그리고 '밥친구'를 모두 소재로 삼고 있는 훌륭한 동화입니다. 돌이켜보면 어릴 땐 맛있는 것과 친한 것이 삶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였는데, 이것들을 한데 엮어서 다루는 동화는 생각보다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오늘부터 배프! 베프!』를 읽으면서 여러 번 감탄했는데, 그중에는 대다수 어린이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를 딱 그만한 비중으로 균형 있게 다루고 있다는 감상도 물론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1인칭 서술자인 '이서진'은 열 살 남짓한 어린이입니다. 같은 반 친구 '오유림', '김소리', '한지우'가 의미 있게 등장하고요. 어느 날 서진이에게 카드가 한 장 생기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서진이가 애정을 담아 '하트 뿅뿅'이라 이름 붙인 이 카드는 실은 급식 카드이고 정식 명칭은 '아동행복나눔카드'인데 단짝 유림이는 체크카드로 오해합니다. 뭐가 됐든 서진이와 유림이에게 중요한 것은 이 카드로 맛있는 떡볶이를 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진이는 그동안 체크카드로 자신에게 맛있는 것을 많이 사준 유림이를 데리고 기분 좋게 분식집에 갑니다.


하지만 곧 문제가 발생합니다. 떡볶이를 다 먹었는데 서진이의 카드로 계산이 안 되는 거죠. 알고 보니 급식 카드로 결제를 할 수 있는 가게가 따로 있는데, 이 분식집은 급식 카드를 받는 가게가 아니었던 겁니다. 카드이기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던 서진이는 당황해 어쩔 줄 모르고, 결국 유림이네 엄마가 가게 주인과 통화를 하는 것으로 상황은 어색하게 마무리됩니다.


아동 급식 카드는 '경제적 빈곤 상태에 놓여 있는 가정의 자녀가 학교에서 급식을 먹지 못할 경우 학교 바깥에서 급식에 준하는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보조하는 카드(나무위키)'입니다. 서진이는 엄마와 둘이 살고 있는데, 엄마는 여러 알바를 하느라 서진이의 식사를 제 때 챙겨주기 어렵습니다. 단짝 유림이네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서진이의 급식 카드와 유림이의 체크카드는 그러한 차이를 단적으로 드러내지만, 정작 두 어린이에게 그 차이는 보이지도 않고 중요하지도 않지요. 그러니까 분식집에서 일어난 일은, 두 친구에겐 사소했던 차이(카드의 종류, 집안의 경제적 형편)가 중요한 일(맛있는 것을 함께 먹는 일)을 가로막은 사건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몇 차례에 걸쳐 반복되는 중요한 테마지요.


이야기 속 '베프'는 서진이와 유림이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 이야기가 친구 관계에 서로 다른 이름을 붙여 활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학교에서 주마다 새로 정해주는 '밥친구'가 되면 급식 시간에 같이 앉아서 밥을 먹어야 하는데, 이번 주에 서진이는 소리와, 유림이는 지우와 각각 밥친구가 되었지요. 이건 말이 됩니다. 서진이와 소리는 둘 다 급식 카드를 가지고 있고, 유림이와 지우는 같은 호텔 식당을 이용해본 경험이 있거든요.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배프'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색다른 친구 사이를 만들어냅니다. 배프는 소리가 지어낸 말입니다. 배고플 때 만나서 같이 밥 먹는 친구라는 뜻이지요. 공원의 꽃덤불 속에 사는 아기 고양이 '소망이'는 소리의 배프입니다. 여기에 서진이가 끼고, 이어서 유림이도 끼게 됩니다. '베프'는 아무래도 배타적인 독점 관계의 성격이 짙고, '밥친구'는 아마 점심시간마다 규칙처럼 지켜야 하는 관계일 겁니다. 그에 비해 '배프'는 배고플 때 만날 수만 있으면 되니까 그때그때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소리, 소망이, 서진이, 유림이가 배프라는 하나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겠지요.


참고로 이 이야기에는 나쁜 사람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지속적으로 상처를 입는 면이 우리가 사는 현실을 많이 닮았습니다. 그래서 더 아슬아슬 마음 졸이며 보게 되지요. 서진이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경험을 지 때마다 독자는 안절부절못하게 됩니다. 경험은 한 사람이 세계를 바라보는 중요한 재료인데, 서진이가 이런 경험을 기준으로 삼아 좌절과 무기력을 익히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 듭니다. 다행히 이야기는 그런 바람을 꽉 채워주고도 남을 만큼 다정하지요.


어른 독자에게도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남기는 작품입니다. 어린이의 시선으로 쓰인 이야기는 간혹 어린이 독자와 어른 독자의 이해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확장시켜 주는데, 전 『오늘부터 배프! 베프!』가 바로 그런 작품의 모범적인 예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진이 또래의 아이가 이 이야기를 처음 읽고 나서 10년, 20년 후에 다시 읽는다면, 꽤 다른 의미로 가닿을 지점이 여럿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해 어른 독자가 가진 이해를 큰 폭으로 확장시켜 주지요. 전 가끔 어린이가 보이는 행동의 일면으로 그 어린이를 다 아는 것처럼 굴 때가 있습니다. 이 작품을 보고 나니 역시 그러면 안 되겠단 생각이 다시 한번 드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혀를 내두르게 되는 기발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