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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Dec 06. 2022

나를 알아갈 권리를 행사하는 일

유우석, 『축구왕 이채연』, 창비, 2019

* 쪽수: 172쪽



오늘은 한껏 무르익은 월드컵 분위기에 기대어 축구 이야기를 잠깐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기억나는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제가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는 언제나 축구였습니다. 축구와 관련된 기억엔 유독 황홀한 추억이 덧칠해져 있지요. 고등학교 때 점심과 저녁을 모두 학교에서 먹었는데, 다 먹고 나오면 운동장은 항상 축구하는 친구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여름에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고, 덕분에 전 졸업할 때까지 주말 밤의 한 귀퉁이를 맨유 경기와 병맥주 두 병으로 채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손흥민 선수 경기를 꼬박꼬박 챙겨봅니다. 그밖에도 관심 있는 팀들의 경기 중계와 하이라이트, 뉴스를 틈틈이 찾아보고요. 저에게 축구는 그야말로 마성의 매력을 지닌 종목입니다. 그런 개인적인 애정을 담아 오늘은 재미있는 축구동화 한 편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제 기억에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학교 체육 수업에서 '남자는 축구, 여자는 피구'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쓰였습니다. 경우에 따라 '남자는 축구, 여자는 응원', '남자는 축구, 여자는 자유시간'으로 바뀌기도 했고요. 뭐가 됐든 축구는 남자의 스포츠였습니다. 이건 비단 저 혼자만의 경험은 아닐 거예요. 이제는 한국동화의 고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고정욱의 『가방 들어주는 아이』(2003)의 TV 각색 버전(2011)에는 당시의 그런 분위기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실 저 작품에서 영택이가 겪는 아픔의 핵심은 가방을 들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축구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건 영택이가 여자였다면 겪지 않아도 되었을 아픔이지요. 지금 보면 좀 이상한 방식으로 꼬여 있는 각색인데 10년 전 시청자들은 그걸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축구는 남자의 스포츠라는 게 그땐 '경험적 사실'이었거든요.


지금은 어떤가요. 우선 '남자는 축구, 여자는 피구'와 같은 맹목적인 구분이 비교육적이라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스포츠뿐만 아니라 어린이들의 생활 영역 전반에 걸쳐 그런 인식이 확대되었습니다. 그만큼 성별 편견을 심화할 수 있는 사고와 언행에 대해 사회 전체적으로 많이 민감해진 것이죠. 옳은 변화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돼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뭐가 얼마나 달라진 걸까요. 어린이의 세계에서조차 여전히 거친 승부욕은 남자의 미덕이고, 배려와 공감은 여자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기류가 있습니다. 전 이게 어떤 인위적인 왜곡의 산물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유우석의 장편동화 『축구왕 이채연』은 그런 왜곡이 실제 여자 어린이들의 삶과 인식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에 그렇게 새롭거나 독특한 발상은 거의 보이지 않아요. 축구라는 대중적인 스포츠에 익숙한 성장 서사를 입힌 전형적인 스포츠 드라마죠. 그럼에도 이 작품이 돋보이는 지점이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주인공 '이채연'이 여자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 현실에는 이미 조소현 선수와 지소연 선수를 포함해서 걸출한 한국인 여성 축구선수가 여럿 있지만, 이런 경우에 동화는 오히려 현실보다 조금 느린 감이 있거든요. 『축구왕 이채연』이 단연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야기는 채연이가 다니는 남대초등학교에 새로 생긴 여자 축구부가 지역대회를 거쳐 전국대회에 출전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송지영', '엄신혜', '도지혜', '강소연', '윤소민'이 축구부원으로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되고요. 각각의 캐릭터가 개성이 뚜렷해서 등장인물이 여럿임에도 가독성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처음에 채연이는 축구에 아무 흥미도 느끼지 못하지만, 새로 온 선생님이 여자 축구부를 모집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지영이를 따라 축구부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땀 흘려 훈련하는 과정에서 축구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지요. 축구는 채연이에게 승리의 기쁨과 패배의 교훈을 알려주고, 팀워크의 매력과 동료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줍니다. 채연이와 친구들은 그렇게 '축구가 재미있다는 것'과 '내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갑니다. 그런데 왜 그동안에는 몰랐을까요.


이야기 속 남대초등학교에는 그동안 남자 축구부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운동을 좋아하는 지영이, 축구에 진심인 신혜 같은 친구는 축구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죠. 물론 하고 싶은 마음만 있다면 둘이서도 할 수 있고, 아니면 남자 축구부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말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보다 합리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대책은 여자 축구부를 만드는 것이어야겠죠. 결국 타고난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탐색해볼 기회를 갖는 것, 그럼으로써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스스로 알아갈 권리를 행사하는 것, 『축구왕 이채연』은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남자는 축구, 여자는 ㅇㅇ'라는 말에 길들여져 있던 때, 저는 그 말에서 모순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원래 그런 줄 알았고, 그게 당연한 줄 알았고,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구조적 모순의 책임을 쉬이 개인에게 돌리게 됩니다. '하고 싶으면 해.', '누가 하지 말래?'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런 무심한 말들은 또다시 사회 전체의 왜곡된 인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마련이고, 결국 어떤 어린이들은 경험해보기도 전에 한 세계로 가는 호기심의 통로를 닫아버리게 될 겁니다. 성별 편견에 관한 한, 우리 사회가 번거롭더라도 끊임없이 합리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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