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안 부이텐후이스, <아이 앰 히스 레저>, 2017
<다크 나이트>의 조커, 히스 레저의 죽음에 세계가 애도를 표했다. 2008년 1월 22일, 28세의 나이로 생을 마친 그의 삶과 죽음을 조명하는 영화 <아이 앰 히스 레저>가 2017년 10월, 그가 떠난 지 약 10년 만에 완성되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는 히스 레저의 다소 몽환적인 표정과 함께 시작된다. "이제 여행을 떠날 거야." 인상적인 출발이다. 그는 왜 자신의 사소하기 그지없는 일상들을 영상으로 남겨 기록해두었을까. 이제 관객들은 히스 레저의 삶 속으로 빠져든다.
영화는 히스 레저가 남기고 간 갖가지 영상기록물들과 가족 및 지인 인터뷰, 그리고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안내로 구성되었다. 관객들은 이를 통해 히스 레저의 삶과 죽음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갖게 된다. 소박한 일상과 소탈한 웃음에서부터 예술적 기질과 재능, 작품을 대하는 진지함과 열정에 이르기까지, 스크린은 그만의 독특한 매력으로 가득 채워진다.
이 글에서 히스 레저의 작품과 그 속에서의 역할, 그의 연기를 새삼스레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죽음을 둘러싼 온갖 루머의 진위에 대해 논하고픈 마음도 없다. 그저 히스 레저가 온몸으로 보여준 삶의 모습에 대한 짤막한 생각들을 수첩에 적듯 담담히 적어둘 뿐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을 짧은 영상으로 찍어 남겨둔 히스 레저의 방식 그대로 말이다.
그의 눈빛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때로 부드럽고 때로는 차가운 그의 표정을 완성하는 것은 눈빛이다. 아침을 깨우는 듯 몽롱한 눈빛부터 마음까지 꿰뚫는 듯 맑게 응시하는 눈빛까지. 그의 눈빛은 말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아이 앰 히스 레저>를 본다면, 영화의 엔딩에 나오는 그의 강렬한 눈빛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히스 레저는 항상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다. 그는 그가 바라보는 세상과 사람, 그리고 자신과 예술의 모습을 네모난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두었다. 아마 그가 세계를 바라보는 어떤 관점을 반영하고 있을 것이나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이토록 비범한 사람이 왜 이렇게 뒤죽박죽 아무렇게나 나열된 것처럼 보이는 영상을 남겨두었을까. 나는 그저 히스 레저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어린아이처럼 끊임없이 만지고 느끼고 탐구했다는 사실만을 막연한 감각으로 알 수 있었다.
히스 레저는 다양하고 풍부한 감정을 가졌다. 그 다채로운 빛깔의 감정들로 그는 많은 사람을 매료시켰다. 일상에서, 그리고 영화에서 보여준 그의 내면의 감정과 감수성은 다른 사람이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많은 감정을 깊이 있게 느끼고 표현하는 그의 얼굴과 몸짓에서 특유의 젊음과 건강, 활기와 행복을 찾을 수 있어 좋았다.
행복은 남에게 애써 보여주거나 인정받지 않아도 잔잔히 평온한 마음의 상태이다. 때로 격정적이고 격앙되어 보였지만, 그가 행복한 인생을 살다 간 것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히스 레저가 기획하고 그 자신이 몸소 안내한 그의 인생 여행을 마칠 때쯤, 어느새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그의 삶과 죽음에 깊이 잠겨있던 나를 볼 수 있었다. 엔딩에서, 자신의 삶을 주제로 한 영화가 나온다면 어떻겠느냐는 물음에 '참 따분한 영화가 되겠네요'라 답하는 히스 레저의 담담한 목소리는 쓸쓸하면서도 아름답게 들렸다. 때때로 삶은 영화보다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