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우석, <변호인>, 2013
JTBC에서 추석 특선영화로 방영한 <변호인>을 오랜만에 보고 옛날 리뷰를 찾아보았다. 또 다른 실화 기반 법정 영화 <부러진 화살>과 비교한 글인데, 나름대로 생각해볼거리가 있는 듯해 다시 올린다.
2012년에 개봉한 영화 「부러진 화살」에서는 석궁 교수라 불리는 성대 수학과 김명호 교수가 실제 인물로 모티브가 됐다. 김명호 교수가 당시 교수지위확인 소송에서 위법한 판결을 내렸다고 판단한 박홍우 판사의 집에 찾아가 석궁에 화살을 장착한 채로 겨누며 겁박한 사건. 영화 줄거리 전개는 김명호 교수 쪽 주장을 충실히 담았다.
영화를 워낙 잘 만들었기 때문에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 사법부가 죄다 타락한 것처럼 보여서 불신과 분노를 금할 길이 없는데, 반대쪽 기사나 공판 기록을 좀 읽어보면 이게 영화 자체가 균형을 상당히 잃은 감이 있다.
영화 속 김경호는 철저히 법전에 근거하여 주장을 펼치는 논리 정연한 인물로 나오지만, 실제 사건 속 김명호는 때때로 아이같이 고집을 부린다. 예를 들어, 판사가 자해를 했다고 주장하면서 국과수 혈흔 감정을 따로 신청하는 것, 혈흔 감정 결과 본인 피로 밝혀질 경우에도 주장을 철회할 뜻이 없다고 밝히는 것 등은 딱 어린아이가 몽니 부리는 수준이다. 영화는 이런 장면은 담지 않았는데, 친구와 싸우고 들어온 어린아이가 부모님께 제 잘못은 빼고 친구 잘못만 고자질하는 풍경을 떠오르게 한다.
하여튼 실제 상황에서는 검사, 판사들 심지어 박훈 씨를 제외한 나머지 변호사들도 엄청나게 난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 재판이란 게 결과를 짜 맞추고 진행해가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당시 교수지위확인 소송 항소심 주심이었던 이정렬 판사가 말했듯 처음엔 김명호 교수 손을 들어주려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내부 협의 사항은 밝히지 않는 게 원칙인데도 당시 영화 개봉 후 쏟아지는 비난에 억울함을 이기지 못해 징계 받을 각오까지 하고 공개한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는 논란의 여지를 허용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법부의 부당한 권력 남용과 김명호 교수의 억울한 사연에 초점을 맞추어 줄거리를 전개한다. 초등학생들 다투는 얘기도 한쪽 말만 듣고 판단해서는 안 되는데, 이 영화는 상당히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데도 그에 걸맞은 책임감이 보이지 않았다. 김명호 교수의 고지식함이야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모든 타협을 악으로 보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재판에 승복하지 않으려는 그분의 자세는 비판받아야 마땅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결과를 정해놓고 재판을 그에 맞추어 진행하는 것. 이건 김명호 교수 쪽에도 해당되는 얘기였다. 다만 그에게는 사법 권력이 주어지지 않았을 뿐. 물론 그게 핵심이기도 하지만, 재판을 둘러싼 도식을 극단적으로 단순화하면 김명호 교수도 그리 바람직한 태도를 보였던 인물은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거다.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라는 대사 속 '개판'을 만든 책임 중 절반은 김 교수 쪽에 있었다.
그러면 이제 「변호인」으로 넘어가 보자. 「부러진 화살」과 같은 측면에서. 결론적으로, 「부러진 화살」처럼 「변호인」도 한쪽 이야기를 충실히 담기는 했으나 내 판단에, 이건 이제야 겨우겨우 균형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영화가 갖는 파급력은 그런데서 오는 듯하다.
「부러진 화살」과 「변호인」은 사건 자체가 갖는 무게감도 전혀 다를 뿐만 아니라, 실제 인물이 갖는 무게감도 차원이 다르다. 대통령 노무현과 별개로, 「변호인」을 통해 본 변호사 노무현은 위인이다. 그리고 영화 속 사건의 실제 모티브가 된 부림 사건의 경우, 당시 국보법으로 처벌한 일들이 으레 그랬듯이 용공 조작 사건임이 너무도 명백히 드러난 상태. 그리고 실제 고문 피해자와 가해자가 상반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좋지 않은 정세와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내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어두웠던 시절에 이미 망가져버린 인생들을 편들어 이런 영화를 탄생시켰다고 한들, 이제 와서 균형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나. 기우뚱한 현실에서 영화 한 편이 반대쪽으로 살짝 기운 것으로 균형을 이루었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 그래서 나는 겨우겨우 균형을 찾아간다고 표현하고 싶은 거다.
「부러진 화살」과 「변호인」은 사회적 파급력도, 그 파급이 갖는 방향성도 완전히 다른데 그 이유는. 「부러진 화살」은 공권력의 남용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분노를 부추기는 역할을 했던 반면, 「변호인」은 폭압적인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국민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조명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부러진 화살」 속 의뢰인과 변호인은 논리싸움에서 조목조목 이기지만 타협이 없고, 무엇보다 감정적 대응이 없다. 하지만 「변호인」 속 의뢰인과 변호인은 서로의 감정이 격앙된 상태에서 때로는 일면 무리해 보이는 논지를 펼치며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두 영화를 본 관객들의 반응이 서로 다른 이유는 여기에서 오는 것 같다. 「부러진 화살」을 보고 나온 관객은 분노를 느끼고, 「변호인」을 보고 나온 관객은 슬픔과 감동의 여운을 느낀다. 뭐가 더 오래갈까.
「부러진 화살」이 개봉한 얼마 뒤에 이런 말이 떠돌았다. "진실을 알고 싶은 자, 영화관에 가라." 하지만 「변호인」에서는 이런 유치한 구호가 필요 없다. 진실은 이미 오래전에 드러났고, 영화는 그저 바람직한 연대의 표본을 보여줄 뿐이다.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어깨를 걸고, 아프고 힘든 사람이 나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얻으며 위로를 받고, 거기서 다시 한 발짝 걸어나갈 수 있는 힘을 내는 것. 그게 영화에서 말하는 바람직한 연대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