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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Mar 12. 2023

경계의 바깥으로부터

49. 리리브 - 「외자혈손전(外者血孫傳)」(104매)

한국사에서 드물게 존재했던 태평성대에 대한 기록을 읽다 보면 이따금 그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이 시기 평화와 안녕의 범위는 어디까지였으며 또한 누구의 것이었을까. 같은 땅을 밟고 살아가면서도 태평성대에서 당연하게 배제되어야 했던 이들은 과연 누구였을까.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기술 세계의 끄트머리에 편입된 존재로서 그것이 가져다주는 편의에 어떤 식으로든 물들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오늘,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안녕의 범위는 어디까지이며 익숙한 이데올로기는 누구의 이익에 우선적으로 복무하는가. 모든 개체가 완전하게 행복할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끊임없이 이러한 의문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 과정에서 일관적으로 발견되는 우선순위가 한 세계의 윤리관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지난 시절에 무심코 행해지던 관습을 오늘의 기준에 비추어 재검토하려는 시도는 모두 그러한 맥락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겠죠.


「외자혈손전(外者血孫傳)」은 시대극의 배경을 조선 후기로 설정하고, 시작부터 『홍길동전』의 서두를 인용함으로써 메시지의 초점을 뚜렷이 하고 있습니다. '사방에 일이 없고 도적이 없으며 시화연풍하여 나라가 태평하더라'는 『홍길동전』의 무심한 글귀는, 평범한 이들을 사회가 정한 테두리의 바깥으로 몰아내던 불의한 시대를 역설적으로 증언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요. 「외자혈손전(外者血孫傳)」 역시 그러한 시대적 문제의식을 이어가는 측면에서 유의미한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무명無名'입니다. 주인공에게 고유한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 전략은, 역사 속에 실존했으나 어떤 무신경한 관습에 의해 손쉽게 지워진 이들을 상징하는 맥락에서 각별한 의미를 띠게 됩니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에 '외자外者'라는 라벨을 추가로 각인시킵니다. 즉, 「외자혈손전」의 주인공은 제대로 된 이름도 없고, 공동체 안에 안정적으로 속할 수도 없는 외로운 처지인 것이죠. 이렇듯 극단적으로 고립된 인물을 통해 이야기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요.


무명의 아버지는 가진 것 많은 양반 가문의 대감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대감은 어느 모로 보나 죽어 마땅한 인물인데, 그럼에도 그를 죽이는 역할을 딸에게 부여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요. 아무리 악인이라도 제 딸의 손에 죽음을 맞게 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치밀한 서사가 필요할 겁니다. 「외자혈손전」은 대감을 시대의 불의를 적극적으로 이행하고 그를 통해 이익을 취하는 탐욕스러운 인물로 형상화함으로써 결말에 필요한 설득력을 단계적으로 갖추어 나갑니다.


* 소설과 리뷰 전문은 아래 링크를 이용해주세요.



소설 - 「외자혈손전(外者血孫傳)

리뷰 - 「경계의 바깥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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