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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May 14. 2023

가족이라는 타인에게

김원아, 『안녕, 엄마 안녕, 로마』, 웅진주니어, 2022

* 쪽수: 148쪽



동화를 읽다 보면 인물을 묘사하는 작가의 시선에 애정이 듬뿍 담겨 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동화의 영토에 가장 가까운 정서는 사랑과 애정이고 가장 먼 정서는 냉소와 절망입니다.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그러한 경향이 있는 것은 저에겐 반갑고 다행스럽게 느껴집니다.


『안녕, 엄마 안녕, 로마』에서도 독자는 작품 속 인물에게 깊은 애정을 지닌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시선은 아주 부드럽고 섬세한 방식으로 인물의 감정을 주시합니다. '승아'의 엄마는 승아가 열한 살일 때 혼자 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2년 뒤, 엄마는 로마에 있으니 놀러 오라는 짧은 내용의 편지를 승아 앞으로 보내지요. 승아는 아빠를 위해서 엄마를 한국에 데려오겠다는 마음으로 혼자 로마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이후 이야기는 승아가 엄마와 14일 동안 로마에 머물면서 경험하고 느끼는 것들을 그려내지요.


『안녕, 엄마 안녕, 로마』는 중요한 인물들에게 아름다운 도시의 색과 분위기를 그대로 입히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 나오는 승아 엄마는 대낮의 로마를 닮아 있고, 승아는 그런 엄마를 낯선 여행지를 탐험하듯 조금씩 알아갑니다. 엄마는 로마에 있을 때에만 비로소 그가 가진 삶의 에너지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런 엄마의 생기 넘치는 모습에 승아는 미움과 애정의 양가감정을 느끼게 되지요.


하지만 승아가 어떻게 느끼든 엄마는 타인입니다. 엄마도, 아빠도, 승아도 모두 가족이기 전에 한 명의 사람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원히 타인이지요. 승아의 짧은 로마 여행은 이 간명하면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실을 깨닫는 과정으로서 의미를 획득합니다. 엄마는 승아를 버린 것이 아니고, 승아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면에서 그 반대였다는 것을 승아는 결국 알게 되지요. 엄마는 단지 어느 시기에 한국에서의 삶을 견딜 수 없었던 것뿐입니다.


많은 한국인에게, 특히 여성에게, 한국의 문화 규범은 답답하고 따분하게만 느껴집니다. 그것은 때로 보이지 않는 굴레가 되어 한 사람의 자유를 심각하게 억압하기도 하지요. 뭐 다른 나라에 가봐야 크게 다를 것 없을 수도 있지만, 그건 또 직접 가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에 나오는 승아 엄마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을 찾아 낯선 곳으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그 자연스러운 욕망을 놀라울 만큼 편안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기실 김원아 작가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장점은 스토리텔링의 선명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 장점이 더욱 빛을 발한 것 같지요. 『안녕, 엄마 안녕, 로마』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꼭 맞는 이야기만 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아주 깨끗한 인상을 남깁니다.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어요. 자연히 명료한 메시지가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되지요. 전 이것이 동화가 지닐 수 있는 매우 귀한 미덕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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