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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Apr 29. 2023

끊임없이 어긋나는 존재에 관하여

단요, 『다이브』, 창비, 2022

* 쪽수: 180



오늘은 근사한 표지 디자인이 돋보이는 청소년 SF 소설 『다이브』를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압축적으로 표현하자면 이건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에 수중 도시 이미지를 결합한 정체성을 한국의 서울에다 이식한 결과물입니다.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듯, 이걸로는 다 설명될 수 없는 측면이 많고요. 제 경우에는 이 이야기가 뜻밖에도 매우 서정적이었다는 감상이 그러한 측면에 해당될 수 있겠습니다. 『다이브』는 굉장히 감정적인 소설이에요. 사건 전개의 비중이 낮거나 감정 묘사에 특히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는 뜻은 아니고, 그냥 읽고 나서 든 느낌이 그렇습니다. 이건 어쩌면 단순히 취향이나 인상의 문제일 수 있어요.


이 작품의 첫 문장은 '서울은 언제나 한국의 동의어였다.'인데, 21세기 한국 독자에게 이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첫 문장이 얼마나 있을까 싶습니다. 그만큼 꽤 많은 발상을 소소한 에피소드로 풀어낼 수 있을 법한 문장인데, 『다이브』는 그런 거 없이 곧장 본론으로 직행하지요. 첫 문장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은 이렇습니다. '세상의 얼음이 모두 녹아서 바다가 건물을 뒤덮었어도, 그래서 인천이 수몰된 다음에도, 온갖 나라들이 전쟁을 벌였을 때에도, 한국을 지켜주던 댐이 무너지고서도 서울 사람들은 계속 서울에 살았다.' 그러고 보니 첫 챕터의 제목은 '물에 잠긴 세계'였습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다이브'라는 제목에 따라붙는 SF적 설정이 단숨에 이해되지요. 그러니까 이곳은 도시와 함께 물속에 가라앉은 무언가를 찾기 위해 반드시 다이빙을 해야 하는 세계인 겁니다. 구체적인 장소는 당연히 서울이고, 시간적 배경은 2057년입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지구적 위기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흥미로운 상상에, 그만큼 영민한 도입부라고 할 수 있겠죠.


이 세계에서 수중 도시를 탐험하며 쓸만한 물건을 건져오는 사람들은 '물꾼'이라 불립니다. 주인공 '선율'도 서울 노고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물꾼이죠. 열흘 전, 선율은 남산의 물꾼 '우찬'과 시비가 붙어 내기를 걸었습니다. 둘은 주어진 보름 동안 더 희귀한 물건을 구해오는 사람이 내기에 걸린 것을 갖기로 했습니다. 선율이 이기면 명동 구역에 다이브할 권리를 얻게 되고, 지면 다이브에 필요한 공기탱크와 내기를 위해 건져온 물건을 빼앗기게 됩니다.


하지만 내기 자체는 이 작품의 주된 관심사가 아닙니다. 『다이브』는 누가 내기의 승자가 되느냐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고 진지한 이야기를 들려주지요. 내기한 지 열흘째 되던 날, 선율은 한 빌딩의 지하에서 산 사람과 거의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한 기계 인간을 건져옵니다. 선율은 짧은 고민 끝에 배터리를 넣어 기계 인간을 깨웁니다. 그리고 그가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복제품이라는 것, 그의 마지막 기억이 2038년이라는 것, 나이는 열여덟이고 이름은 '수호'라는 것 등을 알게 되지요.


이쯤에서 이야기는 '잃어버린 4년의 기억'이라는 다분히 클리셰적인 소재를 들고 옵니다. 제품의 일련번호에 따르면 수호의 복제 인간이 제작된 연도는 2042년입니다. 하지만 그의 기억은 인간 수호가 2038년까지 간직했던 버전으로 이식되어 있죠. 복제인간 수호는 그 4년 동안의 기억을 되찾기로 결심하고 선율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서울이 물에 잠기기 전, 죽은 수호의 복제인간을 만들기로 결정한 것은 수호의 부모였습니다. 딸의 죽음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부모가 복제인간을 만들어서라도 그것을 이겨내보려 했다는 건데, 정작 수호는 그걸 바라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복제인간 수호가 인간 수호의 그런 감정적 기억까지도 모두 데이터로 보존하고 있었다는 것이죠. 결국 죽은 수호와 동일한 정체성을 지닌 복제인간 수호는 딸을 대신해주길 바라는 부모의 바람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극심한 갈등을 빚게 됩니다. 즉, 잃어버린 4년은 또 다른 버전의 복제인간 수호가 자신을 만들어낸 부모와 대립하며 고통스럽게 보낸 시간이었던 것이죠.


코드와 명령어에 따라 작동하는 기계에 불과한, 그래서 그저 죽은 딸 노릇만 잘해주면 그만이었을 복제인간 수호가 부모의 기대에 끊임없이 어긋나는 장면들은 이 작품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윤리를 알맞게 대변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정말로 살아있는 누군가를 인위적으로 창조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렇게 태어난 당사자의 의지를 과연 어디까지 존중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은 이제 더 이상 사소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다이브』에서 그랬듯, 원하는 누군가의 완벽한 복제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제품을 초기화할 수 있는 스위치가 손에 주어진다면 과연 우리는 그것을 거부할 수 있을까요. SF적 공상에 기반한 이런 질문이 지금 시점에 특히 의미심장하게 보이는 건, 그것이 비단 SF 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기보다 오늘날 사람들이 맺고 있는 거의 모든 인간관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물음이기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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