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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Jun 14. 2023

인공존재로부터 던져지는 질문

남세오, 『너와 내가 다른 점은』, 씨드북, 2023

* 쪽수: 136쪽



씨드북 출판사에서 기획한 '내일의 숲' 시리즈의 메인 콘셉트는 '여성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하는 SF'입니다. 지금까지 남세오의 『너와 내가 다른 점은』, 최영희의 『이끼밭의 가이아』 이렇게 두 작품이 나왔고요. 두 작품 모두 좋습니다. 오늘은 그중 『너와 내가 다른 점은』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인간 '서나리'와 안드로이드 '이로엔'의 이야기입니다. '너와 내가 다른 점은'이라는 제목은 이 둘 사이, 정확히는 인간과 안드로이드 사이의 유의미한 차이점을 탐구하는 맥락에서 각별한 의미를 띠게 되지요. 이를 위해 이야기는 고도로 발달한 안드로이드 기술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로엔은 겉으로 봐서는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안드로이드입니다.


육안으로 ―또는 직관적으로― 식별하기 어려울 만큼 정교하게 만들어진 안드로이드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때, 인간이 갖는 독자적인 의미가 축소·왜곡될 수 있음을 지적하는 SF는 그동안 많았습니다. 전 이런 류의 이야기를 볼 때 자주 로저 스포티스우드Roger Spottiswoode의 영화 <여섯 번째 날The 6th Day>(2000)을 떠올리는데, 그건 이 영화가 훌륭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러한 발상을 그 영화를 통해 처음 인상적으로 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첫 경험이라는 건 그만큼 중요한 겁니다. 전 요즘도 <여섯 번째 날> 대신 비슷한 시기에 나온 스티븐 스필버그Steven Allan Spielberg의 <A.I.>(2001)를 먼저 보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보곤 합니다.


『너와 내가 다른 점은』의 이야기는 나리가 다니는 문림고등학교 2학년 3반에 로엔이 전학을 오면서 시작됩니다. 로엔은 '재수 없는 우등생'의 스테레오타입을 충실히 반영한 캐릭터입니다. 저는 모범생을 이유 없이 재수 없게 묘사하는 학원물의 게으른 관성에 약간의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 작품에선 그런 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로엔의 재수 없음은 작품 내적으로 구축된 논리에 따라 충분히 그럴 만한 개연성을 갖습니다. 로엔은 (비록 그 자신은 모르고 있지만)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을 숨기고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테스터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고, 그러기 위해선 인간과의 불필요한 접촉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이 맥락에서 '재수 없는 우등생'이라는 라벨은 로엔에 대한 또래의 관심을 차단하는 방어 기제로 작동하지요. 그러나 단 한 명, 서나리에게는 그게 먹혀들지 않습니다.


이유는 나리의 엄마가 로엔을 만든 인공지능 개발자이기 때문입니다. 나리는 엄마의 통화 내용을 엿듣고 로엔이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로엔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나리는 계속 로엔을 따라다니면서 그가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을 밝혀내려고 하지요. 처음에 그 동력은 로엔에 대한 질투심에서 옵니다. 나리는 엄마가 바빠서 자기를 잘 못 챙겨주는 게 다 로엔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로엔의 정체를 파헤치면서 본의 아니게 로엔과 가깝게 지내는 동안 나리의 심경에 변화가 일어나지요. 그 변화는, 인간과 안드로이드 사이에 사실상 유의미한 차이점이 없다는 깨달음과 함께 찾아옵니다. 이야기는 그 과정을 매우 촘촘하게 묘사하고 있죠.


재미있는 건 이 이야기에서 로엔은 자신이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을 정말로 모른다는 것입니다. 나리의 집요한 추궁에도 흔들림 없이 자신을 인간이라 믿는 로엔의 모습에서 독자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 불안감은 로엔이 진짜로 인간일 수도 있다는 데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반대로 나리가 오히려 안드로이드일 수도 있다는 데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죠. 시야를 조금 더 넓혀보면 독자라는 존재 역시 그렇습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인간이라는 당연한 확신 아래 살아가지만, 그게 사실이 아닌 버전의 세계가 존재할 가능성은 언제나 남아 있지요. 예컨대 우리는 누군가가 정교하게 구축하여 시뮬레이션한 세계 속 데이터에 불과한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건 두 인물의 겉모습이나 행동패턴만 가지고는 누가 인간이고 누가 안드로이드인지 확정적으로 결론을 지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독자는 이야기의 서술자가 결론을 내려줄 때까지 약간의 불안감을 품고 따라가는 수밖에 없지요. 당연하게도 이러한 서사전략은 이 작품의 주제와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인간의 신체는 유전자의 보존과 전달을 위해 프로그래밍된 기계에 불과하다'는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주장에 부분적으로 동의한다면,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근본적 차이점을 엄밀하게 규정하기는 더욱 쉽지 않아 보입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일련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전에 입력된 패턴을 특정한 방식으로 출력하는 기계들인데, 그 방식의 위계를 논하는 각론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고요. 이처럼 정교한 인공존재의 출현은 필연적으로, 인간만이 고유하고 대체불가능한 가치를 지닌다는 자의적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게 합니다. 『너와 내가 다른 점은』은 그러한 질문을 굉장히 따뜻하고 포용적인 방식으로 던지고 있지요. 요컨대 너와 나 사이에 다른 점이 없다면, 우리는 마땅히 동등한 존재로서 존중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이 작품이 던지는 가장 중요한 질문인 것이죠. 또한 전 이것이 우리가 인공존재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보다 건전하고 합리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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