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리 Jul 30. 2023

단절된 시기로부터 배워야 할 것

어윤정, 『리보와 앤』, 문학동네, 2023

* 쪽수: 120쪽



제23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리보와 앤』을 보았습니다. 올해 출간 직후에 좀 급하게 사서 읽었던 탓에 기억이 흐릿했는데, 이번에 다른 원고 쓸 때 참고할 일이 생겨서 다시 꺼내 읽었어요. 그 원고는 한국 아동청소년 문학작품에 나타난 포스트휴먼 캐릭터에 관한 내용이고, 오늘 마감해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리보와 앤』에 대한 내용은 넣지 못했어요. 정해진 분량을 너무 많이 초과하게 되어서요. 어쩔 수 없이 하고 싶은 얘기에 덜 필요한 것부터 들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쉽지만 언젠가 다른 글에서 의미 있게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요.


사람 간 접촉이 엄격히 제한되는 세계의 살풍경이 고스란히 투영된 작품입니다. 『리보와 앤』은 코로나 시국이 한창이었던 2021년 하반기에 응모된 작품이거든요. 이야기 속 '플루비아 바이러스'와 이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련의 현상들은 독자가 아는 코로나 바이러스 및 그 초기 여파와 정확히 일대일로 대응합니다. 인물과 소재, 사건과 주제가 모두 명료하게 이해되지요.


주인공 '나'는 '리보'라는 이름을 가진 도서관 안내 로봇입니다. 도서관 이용객들, 그중에서도 주로 어린이 이용객들과 소통하며 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리보의 역할이에요. 그런데 평화롭던 어느 날, 리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갑자기 처음 듣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면서 사람들이 도서관 밖으로 긴급 대피를 하기 시작한 것이죠. 어리둥절해진 리보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곧 텅 빈 도서관에 혼자 남겨집니다.


이 이야기가 리보의 1인칭 시점에서 쓰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2023년의 독자는 이 도서관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보자마자 이해할 수 있지만, 리보는 그렇지 않잖아요. 더구나 이 도서관은 리보에겐 세계 전체와 동일한 의미를 갖는 절대적인 공간입니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끝까지 리보는 도서관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독자에겐 '플루비아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간단하게 이해되는 사건이, 리보에겐 익숙했던 세계가 한순간에 풀 수 없는 미스터리로 변해버린 사건이 되는 것이죠. 그로부터 발생하는 공허한 긴장감은 독자와 인물 간 흥미로운 이중구조를 형성합니다.


여기에는 물론 쉽사리 납득되지 않는 면도 있습니다. 리보는 사람의 표정에서 감정을 읽고 그에 맞추어 필요한 조언을 해줄 수 있을 만큼 독립적인 판단이 가능한 로봇이지만, 웹에 접속하여 뉴스를 검색하는 간단한 기능은 수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도서관에 플루비아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것이 인간 사회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 수 없는 거죠. 현실에서라면 그 반대가 좀 더 자연스러웠겠지만, 전 이 정도는 괜찮다고 봐요.


이 책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인물은 주인공 '리보', 책 읽어주는 로봇 '앤', 그리고 인간 '도현', 이렇게 셋입니다. 여기서 앤은 그린게이블스의 앤을 오마주한 캐릭터이고, 리보와는 다른 방식으로 단절된 시공간을 경험하는 인물이기도 하지요. 리보는 격리된 도서관에서 사람과 소통하지 못해 쓸모를 잃어가고, 앤은 충전 장치가 망가진 뒤로 동력을 공급받지 못해 의식이 꺼져갑니다. 5층짜리 넓은 도서관 건물에 덩그러니 남겨진 두 로봇은, 코로나 시국에 집집마다 남겨졌던 어린이들의 모습에 포개어지며 안쓰러움을 자아냅니다.


여전히 확진자가 일평균 수만 명을 육박하고 있다지만 팬데믹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더 이상 이전 같지 않습니다. 상황이 나아졌다곤 할 수 없을 것 같고, 그저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 우리의 생활 감각이 달라진 것뿐이겠지요. 어쨌거나 우리는 제법 튼튼한 줄 알았던 이성이 공포로 뒤집히던 시기의 막막함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고, 어느 날 갑자기 재난이 사회를 집어삼켰을 때 가장 힘겨운 시기를 보내는 이들이 주로 힘없고 가난한 약자였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국에 방치되었던 수많은 어린이는 모두에게 그 사실을 한 번 더 각인시켜 주었지요. 지나간, 혹은 여전히 진행 중인 재난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안타깝지만 세상에는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재난이 있게 마련이니, 다음 재난에 대비해 평범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떠한 경우에도 어린이와 같은 약자가 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이성적 원칙을 확립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라질 것들, 남겨질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